최고의 음식
최고의 음식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9.0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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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음식은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기에 매우 중요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맺는 매개체 역할도 크다고 본다. 때로는 따뜻한 밥 한 끼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입에 맞는 음식이 위안이 되기도 하며 관계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흔히 ‘밥 한 번 먹자.’로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인간관계니 만큼 건강 문제를 떠나서라도 우리 삶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다.

어쨌든 무엇을 먹을까 하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특히나 여행을 갈 때는 더욱 그렇다. 여행지의 맛집을 미리 검색하고 가는 것도 현지에서 고민을 수월하게 해결하려는 과정이다.

며칠 전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차기 밀려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자 따분했던지 택시 기사가 자꾸 말을 걸어왔다. 내가 제주에서 왔다는 걸 알자 반색을 한다. 삼 년 전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혼자 다녀온 제주도 여행담을 신 나게 털어놓았다. 고등어조림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갈치 회를 못 먹은 게 제일 아쉽더란다. 

“아내는 강 건너 사는 사람이에요. 딸들은 반찬도 해주고 아이도 돌봐주는 엄마만 좋아하지 늙은 아버지에게는 관심도 없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묻지도 않은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평안치 못 한 속내를 내비친다. 목소리에는 섭섭함과 외로움이 잔뜩 묻어있다. 제주 여행을 혼자 다녀와도 아내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한다. 이쯤 되면 같이 살아도 강 건너 사는 사람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나이 육십이 넘어서야 여행이란 걸 처음 했다는 걸 보면 꽤 어려웠나 보다. 짐작건대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만만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여느 가장처럼 평생 가족을 부양하느라 밤낮 일을 했을 것이다. 자식들이 제각각 가정을 이루고 내외만 남았는데 아내는 딸네 집만 신경 쓸 뿐 남편을 소가 닭 보듯 하는 모양이다. 찬밥 신세가 되어 홀로 겉도는 늙은 가장인 셈이다.

생면부지의 승객에게 털어놓을 만큼 소외감과 서운함이 컸던 듯하다. 식당 아줌마와 나눴던 이야기를 한참 하던 그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고등어조림이 정말 맛있드만요.”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음식을 처음 먹어본 것처럼 몇 번이나 말하며 그걸 먹으러 다시 제주에 오겠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물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도 왠지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혹시 고등어조림을 통해 관계를 복원하고 싶은 바람이 숨어있던 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듣다가 혼자 이렇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만약에 입에 착착 붙었던 조림의 맛과 식당 아줌마의 넉넉함이 그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었다면 그가 먹은 것은 단순한 고등어조림이 아니라 위로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녹여주는 따뜻함이다. 머물고 싶은 분위기다. 그래서 그에게 고등어조림은 최고의 음식이 되었을 것이고 아직까지 그리움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거라고. 물론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를 수 있는 내 뇌피셜일 뿐이다. 남의 속사정과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랴.

제주에는 맛집도 많다. 풍부한 해산물과 토속 음식도 관광객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토속 음식도 진화를 하며 새로운 맛을 자꾸 만들어낸다. 요즘은 제주에 사는 사람보다 외지인이 더 제주의 맛집을 잘 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름난 맛집에서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라도 불편한 상대와 함께라면 최고의 음식은 아닐 것이다.

맛이라는 것도 결국 미각과 심리적인 상태까지도 충족시켜 줄 때라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산해진미가 아니라도 내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고, 비록 소찬일지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둘러앉은 장소가 최고의 맛집이며, 함께 나누는 음식이 최고의 밥상이 아닐까? 왠지 고등어조림을 보면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가장의 목소리에 묻어있던 쓸쓸함이 생각날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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