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눌음 정신 발휘하고 있는 제주인 모두가 영웅"
"수눌음 정신 발휘하고 있는 제주인 모두가 영웅"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8.29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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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주&제주인] 1. 강복덕 안덕면새마을회장

섬의 지질학적 특성 중 하나는 대륙과의 고립이다. 경계가 맞닿은 이웃 지역과 교류하며 의존해야 했던 먼 과거에 대륙과의 고립은 생존과 직결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러나 제주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공존’에 기인한 ‘수눌음 정신’과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약점을 강점으로 극복했다. 감염병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쓴 지금의 팬데믹 위기에서도 제주인 특유의 DNA는 더욱 빛을 내고 있다. 유례없던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고 있는 제주인의 개척 정신은 한반도 지도를 뒤집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본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나갈 제주인의 정신을 다시 조명하고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올해에도 인물 발굴 프로젝트 ‘2021 제주&제주인’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영화 속 악당처럼 지난해 겨울 예고 없이 나타난 코로나19는 전 세계의 국경을 허물며 여전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나라마다 총력을 기울여 맞서고 있지만 감염병과의 전쟁은 아직 마침표 없는 진행형이다.

영화 속 악당을 물리치는 건 결국 ‘영웅’이다. 영웅은 망치를 휘둘러 하늘을 날아다니고, 적의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방패를 들고 있으며, 초록 괴물로 변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지만 현실 속 우리에게 그런 영웅은 없다.

그러나 영화 속 악당이 영웅에게 패하듯이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는 영웅들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망치와 마법은 없지만 수눌음 정신과 불굴의 정신을 무기로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는 ‘우리동네 영웅’이 있기 때문이다.

# 마을 지키는 영웅이자 ‘봉사왕’

강복덕 안덕면새마을부녀회장
강복덕 안덕면새마을부녀회장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다 같이 어울리면서 돕고 사는 것, 그게 수눌음이잖아요. 옛날부터 이어져온데로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았을 뿐입니다.”

지난 25일 서귀포시 안덕면사무소에서 만난 강복덕 안덕면새마을부녀회장(58)는 최근 정부로부터 ‘우리동네 영웅’으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행정안전부는 코로나19로부터 지역과 주민을 지킨 주인공들의 감동 사례를 공유하고, 지역공동체의 회복과 연대를 위해 전국 17개 시·도와 협업해 ‘우리동네 영웅’을 선정하고 있다.

제주지역의 우리동네 영웅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강 회장은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매주 다중이용시설을 방역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생계난에 처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면서 정부로부터 영웅이자 ‘봉사왕’으로 인정받았다.

#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나타나는 영웅 

“작년에는 정말 심각했죠. 사람들이 마스크를 못 사니깐 엄청 불안해했어요.”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제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마스크 품귀현상이 나타났다.

실제 당시 제주지역 KF94 마스크 가격은 1개에 4000원을 웃돌았고, 50개 들이 한 박스는 무려 20만원에 거래됐다.

우리동네 영웅의 첫 활동은 마스크 제작이었다.

강 회장은 회원들과 함께 키친타올로 일회용 마스크 5000개를 만들어 경로당과 마을회관, 면사무소에 배부했다.

강 회장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이 극심해지는데도 마스크를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며 “당시 부녀회장 및 회원들과 함께 키친타올로 마스크를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혼자사는 노인,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분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마스크 대란’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코로나19로부터 지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팔을 걷어붙였다.

산방산과 바다 등 빼어난 자연 경관 덕분에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 코로나19 확산이 걱정됐던 강 회장은 주민과 외지인들이 모두 이용하는 클린하우스에 집중했다.

강 회장은 “회원들과 함께 마을에 설치된 클린하우스 53개와 재활용센터를 전부 돌아다니면서 방역소독을 했다”며 “마을이 관광명소다보니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문수희 안덕면 주무관은 “클린하우스 방역뿐만 아니다. 지역 체육시설과 종교시설,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등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시설들을 직접 방문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알리고 있다”면서 “강 회장과 회원 분들 덕분에 코로나19 지역 확산을 최소화하고 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나타나 봉사하고 있다”며 강 회장을 치켜세웠다.

# “도민 모두가 영웅”

코로나19에 맞서 방역 활동에 나선 강 회장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도 멈추지 않았다.

부녀회 임원들과 정성껏 담근 김치를 이웃들에게 나누고, 다문화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문 주무관은 “코로나19 때문에 봉사활동 자체가 많이 위축된 상황임에도 강 회장은 ‘혼자사는 노인 분들이 김장 김치를 기다리신다’고 걱정하면서 김장 봉사에 나섰다”며 “당일 새벽 주방에 먼저 도착해 곳곳을 소독했다. 감염병 사태 속에서도 안전하게 봉사할 수 있다는 걸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주무관의 자랑 섞인 ‘증언’에도 강 회장은 임원과 회원들 덕분이라며 “어려운 상황에서 부녀회장을 맡게 됐지만 솔선수범을 못 해 항상 아쉽다. 임원들과 회원들이 많이 도와줘서 이렇게나마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지원도 많이 줄었다. 예전처럼 같이 식사도 못하지만 ‘편의점 커피 쏠게’라는 말 한마디에 흔쾌히 봉사에 참여해주는 회원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강 회장에게 코로나19 시대 속 영웅의 의미를 물었다.

강 회장은 “서로 도와주니깐 앞으로 가는 거지 절대 혼자서는 못 간다는 걸 제주인들은 다 안다. 동네마다 ‘우리동네는 우리가 지킨다’ 현수막이 걸려있듯이 도민 모두가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수눌음 정신으로 노력하다보면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버스정류장을 방역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밑반찬을 전달하고, 혼자사는 노인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정성껏 담근 김치를 나누는 일은 어느 동네, 어느 자생단체든 모두가 하고 있는 봉사”라며 “그래서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이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커다란 힘이 된다. 제주도민 모두가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 강복덕 안덕면새마을회장은…

강복덕 회장은 지난 2월 6일 취임했다.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클린하우스 등 다중이용시설을 정기적으로 방역하고 있다.

지역사회 복지 증진 사업을 전개하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좁은 골목길 ‘한줄 주차’를 홍보하는 등 주민 의식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회용품 줄이기, 쓰레기 줄이기 등 제주도와 서귀포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있으며, 서귀포시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로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봉사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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