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가격에도 그저 갖고 싶어 산 책
송·원시대 중국 자료서 고려사 모아 편찬
연구자 7명 수년간 공들여 만든 결과물
평가 박하지만 학문 발전 위해 꼭 필요한 일
요즘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중고서적 거래 사이트를 검색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분야의 전문 서적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 같으면 어느 헌책방에서 한꺼번에 인수한 책들을 등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최근에는 원 소장자가 직접 올리는 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제일 큰 원인은 아무래도 우리 같은 헌책방에 장서를 한꺼번에 넘기면, 한권 한권의 가치를 정확하게 셈해서 제값을 받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권 정도라면 몰라도 몇 천권 내지 그 이상의 책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셈하는 일은 우리 같은 꾼에게도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소위 말하는 ‘퉁’을 쳐서 개략적으로 셈하는 게 이 바닥의 관행인 까닭이다. 이럴 경우 원 소장자는 심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아무래도 서운할 수밖에 없다.
때로 그 서운함의 정도가 아주 큰 것으로 판단될 경우, ‘소중한 장서를 남에게 손수 파는 일’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만 되신다면 한번 직접 판매해 보시라고 내가 먼저 권하기도 한다. 그 소장자의 장서에 대한 마음이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판매자가 등록해 놓은 곳은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이가 아끼던 장서가 한 곳에 몰려있으니 당연히 좋은 책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책을 사고파는 게 생업인 우리 같은 꾼들에겐 계륵과 같은 곳이다. 판매자가 아끼던 책들인 만큼 판매가에 그 애정의 정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서 팔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런 곳에선 나도 장사꾼이 아닌 한사람의 ‘애서가(愛書家)’인 양한다. 맘에 드는 책을 만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산다. 그저 그 책이 갖고 싶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그런 책을 하나 만났다. 이젠 필요도 없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은 그 책에 왜 꽂혔을까? 아마도 중국에서 지낸 8년여 동안 거의 매일 반복했던 작업에 대한 추억과 그 시절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다.
그 책이 바로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이다. 송·원(宋元)시대의 중국 자료에서 고려사 관련 자료를 뽑아 모은 책으로,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가 기획하고 이근명 교수 등 한·중 양국의 연구자 7명이 수년 동안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런 자료집을 편찬하는 기초 작업이야말로 학문 발전의 토대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들어가는 공력에 비해 받는 평가가 아주 박한 작업이라서 다들 꺼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자료집을 엮을 때는 사고전서(四庫全書) 등 디지털화된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겠지만, 검색 결과를 원문과 대조해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건 여전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료 한 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다 어느 새벽녘 그리도 찾던 놈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그 희열이 있기에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도 어디선가 ‘야박한’ 남들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 연구자들에게 심심한 경의(敬意)를 표하는 바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