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박한 평가에도 제 갈 길 걷는 연구자에 ‘경의’
야박한 평가에도 제 갈 길 걷는 연구자에 ‘경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8.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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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만만찮은 가격에도 그저 갖고 싶어 산 책
송·원시대 중국 자료서 고려사 모아 편찬
연구자 7명 수년간 공들여 만든 결과물
평가 박하지만 학문 발전 위해 꼭 필요한 일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표지.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표지.

요즘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중고서적 거래 사이트를 검색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분야의 전문 서적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전 같으면 어느 헌책방에서 한꺼번에 인수한 책들을 등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최근에는 원 소장자가 직접 올리는 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제일 큰 원인은 아무래도 우리 같은 헌책방에 장서를 한꺼번에 넘기면, 한권 한권의 가치를 정확하게 셈해서 제값을 받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권 정도라면 몰라도 몇 천권 내지 그 이상의 책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셈하는 일은 우리 같은 꾼에게도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소위 말하는 ‘퉁’을 쳐서 개략적으로 셈하는 게 이 바닥의 관행인 까닭이다. 이럴 경우 원 소장자는 심정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아무래도 서운할 수밖에 없다.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판권.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판권.

때로 그 서운함의 정도가 아주 큰 것으로 판단될 경우, ‘소중한 장서를 남에게 손수 파는 일’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을 이겨낼 마음의 준비만 되신다면 한번 직접 판매해 보시라고 내가 먼저 권하기도 한다. 그 소장자의 장서에 대한 마음이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판매자가 등록해 놓은 곳은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이가 아끼던 장서가 한 곳에 몰려있으니 당연히 좋은 책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책을 사고파는 게 생업인 우리 같은 꾼들에겐 계륵과 같은 곳이다. 판매자가 아끼던 책들인 만큼 판매가에 그 애정의 정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서 팔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런 곳에선 나도 장사꾼이 아닌 한사람의 ‘애서가(愛書家)’인 양한다. 맘에 드는 책을 만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산다. 그저 그 책이 갖고 싶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그런 책을 하나 만났다. 이젠 필요도 없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은 그 책에 왜 꽂혔을까? 아마도 중국에서 지낸 8년여 동안 거의 매일 반복했던 작업에 대한 추억과 그 시절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다.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차례.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차례.

그 책이 바로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이다. 송·원(宋元)시대의 중국 자료에서 고려사 관련 자료를 뽑아 모은 책으로,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가 기획하고 이근명 교수 등 한·중 양국의 연구자 7명이 수년 동안 공동 작업한 결과물이다.

이런 자료집을 편찬하는 기초 작업이야말로 학문 발전의 토대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들어가는 공력에 비해 받는 평가가 아주 박한 작업이라서 다들 꺼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자료집을 엮을 때는 사고전서(四庫全書) 등 디지털화된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겠지만, 검색 결과를 원문과 대조해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건 여전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본문.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본문.

원하는 자료 한 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다 어느 새벽녘 그리도 찾던 놈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그 희열이 있기에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도 어디선가 ‘야박한’ 남들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 연구자들에게 심심한 경의(敬意)를 표하는 바이다.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엮은이들.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1·2(신서원 2010) 엮은이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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