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사피엔스 시대를 대표할 우리의 디카시(詩)
포노사피엔스 시대를 대표할 우리의 디카시(詩)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8.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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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시인·문학평론가

“현대인에겐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아니라 오장칠부(五臟七腑)가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 몸속의 장기처럼 떼래야 뗄 수 없는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 시대가 됐다”고 공광규 시인이 주장한 바 있다.

호모사피엔스(Homosapiens/현존의 인류를 가리킴)의 시대는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로 진화되었다고 2015년 ‘이코노미스트’에 처음 소개된 이후 7년 만에 세상은 더욱 그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35억명 이상이 이제 손 글씨가 아닌 디지털 문자언어 생활을 한다는 통계를 2년 전 언론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지금은 훨씬 많은 사람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시의 작품성만을 부르짖다가는 시는 일반 대중에게서는 점점 멀어지고 전문가만을 위한 문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문자시를 멀리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욱 발전시키고 널리 사랑해야 할 우리 문학의 본령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의 시를 세계적인 문학 한류로 밀어 올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우리에겐 있다. 바로 디카시(dica-poem)다. 이제 “디카시를 모르면 시인도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시단의 주류 시인들이 디카시를 쓰고 있다.

특히 디카시는 제주대학교 윤석산 교수가 구축한 ‘디지털 한국문학도서관’에 디카시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이상옥 교수에 의해 2002년부터 소개되기 시작함으로써 지금은 시문학의 한 갈래로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었으므로 제주도민이 이의 중요성을 깨닫고 힘을 모은다면 제주도는 디카시의 본향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검인정 국어교과서와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국어사전에도 디카시의 개념이 실려 있고, 고등학교 모의고사와 시험에도 디카시 문제가 실리고 있다. 디카시의 매력에 한 번 빠진 사람은 결코 디카시가 가볍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문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새로운 한류를 만들어 내려고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는 때에 디카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새로운 문학한류로 우뚝 선다면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디카시는 기존의 문자시의 한계인 영상과의 결합, 극 순간의 예술성, 실시간으로 SNS 등으로 소통할 수 있는 등, 문자시를 보완 발전시키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시문학 양식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5.7.5조의 ‘하이쿠’시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그 시를 쓰는 시인이 현재 110만명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으로 세계에 알려지기까지 4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면 디카시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만에 시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 잡고 여러 나라로 전파되고 있는 등 그 발전 속도는 눈부실 정도이니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현대시는 오랫동안 보통의 독자들로부터 멀어져가는 경향을 보여 왔다. 디카시는 시각의 발견을 통해서 그 방향을 역전시키는 새로운 시문학 갈래다”라고 월간 현대시 발행인 원구식 시인의 진단이다.

또한 “디카시는 시와 사진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의 단순한 결합에 그치지 않는다.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의 구체성을 사진과 언어로 상호 보충한다. 사진의 환유에 시의 은유를 포개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이는 추상화된 세계에 대한 저항이자 감각의 확장이다”라고 평론가 구모룡 교수는 진단하고 있다.

시인 오정국 교수는 “시는 찰나의 감각을 영원히 붙잡아두려는 참으로 허망한 진실이려니, 여기 찰나의 빛을 시로 번역하고 해독하는, 디카시”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떠나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것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처럼 당신이 내게 했던 말처럼. 빛과 그림자를 한데 묶어 거울 속에 놓는다. 새로운 사랑이,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 ‘디카시(Dica-poem)’가 가진 힘이다”라고 김륭 시인은 주장한다.

이러한 일상의 변화를 만든 근본 원인은 권력이나 자본과 같은 특정 세력이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자발적 선택’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TV를 끊고 스마트폰을 미디어와 정보의 창구로 선택하고 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은행 이용보다는 온라인 뱅킹을 선택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마트와 백화점 대신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제 문학으로 옮겨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디카시는 제주도와 한국문학의 보석이 될 수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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