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아프간 그리고 대한민국
모가디슈, 아프간 그리고 대한민국
  • 부남철 기자
  • 승인 2021.08.18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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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가족들과 영화관을 찾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 딸이 내려와서 가족끼리 영화를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며 예약했고 가족이 심야 영화관을 찾았다.

기자의 기억에 가족 모두가 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속 영화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무런 기대감을 없이 보게 된 영화가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휴대전화에 떨어진 뉴스 속보와 오버랩되면서 오랜만에 가족끼리 많은 대화를 하게 됐다.

‘모가디슈’

제76주년 광복절에 본 영화 제목이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고립됐던 남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통 사람의 시대’를 내세운 6공화국이 출범한 후 우리나라가 유엔(UN)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투표권을 많이 가진 아프리카에서 외교 총력전을 펼치던 소말리아 대사관의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어렵게 잡은 소말리아 대통령과의 면담에 가는 길에 무장 강도를 만나고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이 서울에서 어렵게 공수해 온 선물마저 빼앗긴다.

약속 시간에 늦어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하는 순간,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 유유히 면담을 마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한보다 훨씬 앞서 아프리카에서 외교적 기반을 닦아 온 북한은 현지 정보원과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지만 내전이 벌어지자 믿었던 정보원을 앞세운 반군에 대사관을 약탈당한다. 우호국인 중국 대사관으로 피하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고, 마지막 남은 선택은 무장 경찰의 보호를 받는 남한 대사관뿐이다.

안기부 출신인 강 참사관은 북한 대사관 사람들을 모두 전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 대사를 설득해 북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

한 대사와 림 대사가 여유 있게 인간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다혈질인 강 참사관과 태 참사관이 대립하며 긴장을 폭발시키지만 강 참사관이 어렵게 달러로 매수한 경찰이 철수하자 남북은 오로지 생존과 탈출을 위해 한 배를 타게 된다.

어린아이조차 총을 난사하고, 거리에 쌓인 시신을 타고 넘어야 하는 모가디슈 시내에서 책과 모래주머니로 방탄 조치를 한 자동차에 나눠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하는 남북 사람들의 목숨을 건 탈출 장면은 압권이었다.

케냐 공항에 도착 후 마중 나온 남북의 정보기관을 앞에 두고 외면해야 하는 모습에서는 남북 분단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줬다.

현재의 남북 상황을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오면서 전원을 켠 휴대전화에 속보가 올라와 있었다.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뉴스를 통해서 본 아프가니스탄 탈출 모습은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다. 특히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열강들의 침략과 내전을 비롯해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침공 등 수난의 역사로 요약된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주도권을 놓고 이른 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였으며 이후 내전 상황이 계속됐다.

1979년에는 소련의 침공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다가 무너졌으며 1994년 등장한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슬람 종교법을 앞세운 엄격한 통제 사회가 됐다.

이후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 조직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줬다가 미국의 대규모 침공으로 붕괴됐다.

그러나 20년 만에 미군이 철수하자 공세를 강화한 끝에 결국 아프간 정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을 버려둔 채 거액의 현금을 싸들고 해외로 도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의 모습은 혐오감을 자아냈다. 정치 지도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각 당의 대선 주자들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정책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대선 주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혐오감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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