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헌책방 즐김이’ 작가의 나들이 기록
자타공인 ‘헌책방 즐김이’ 작가의 나들이 기록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8.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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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서점과 ‘헌책방에서 보낸 1년’(2006)

선물 들고 찾아온 낯설지만 친근한 손님
서울 뿌리서점 단골 인연 최종규 작가
2004~2005년 다녀온 헌책방 얘기 담아
‘책은 제 삶’ 헌책 대한 작가 애정 가득
최종규 작가의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와 ‘곁책’(스토리닷 2021).
최종규 작가의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와 ‘곁책’(스토리닷 2021).

지난 7월 중순 즈음 계속되는 무더위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나는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우리 책방을 찾아 온 분이 있었다. 청바지를 잘라 만든 듯한 미니 치마에 고무신을 신고 헤어스타일은 댕기머리이니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손님이었다.

초면이라는 낯섦과 묘하게도 왠지 모를 친근감이 함께 하는 그 손님은 다양한 책 몇 권을 골라 일단 셈을 치르고,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배낭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잠시 후 내게 내민 것은 조그만 미니 캔버스에 ‘구름은’이라는 시가 담긴 캘리그라피 작품과 ‘곁책’(스토리닷 2021)이라는 나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따끈따끈한 책이었다.

최종규 작가의 시 ‘구름은’ 캘리그라피 작품.
최종규 작가의 시 ‘구름은’ 캘리그라피 작품.

작품과 책의 속지에 ‘제주 동림당 지기님’이라 적은 것으로 보아 내게 주는 것임은 분명했지만, 생면부지 초면에 이런 과한(?) 선물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그러다 책 표지에 아주 조그맣게 적힌 글쓴이의 이름을 보고 나서야 여태껏 서로 상면한 적은 없었지만, 예전부터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누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선문답(禪問答). “아~ 혹시 제가 아는 그 분이실까요?” “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제야 확실해졌다. 그 막연한 느낌의 친근감, 그 ‘연(緣)’의 정체가 뭔지….

그 시작은 바로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이다. 한 헌책방을 수십 년 드나들다 보니 웬만한 단골들은 안면은 있게 마련이지만,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책방지기를 통해 전해 들어 왠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손님도 있었다. 나도 헌책을 좋아해서 웬만한 헌책방들은 두루 섭렵해서 알고 있는 편이지만, 전국구 헌책방으로도 유명한 뿌리서점 사장님이 ‘원픽’으로 인정하는 자타공인 ‘헌책방 즐김이’ 작가 최종규 님. 그도 그런 손님 가운데 하나였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의 표지에 수록된 옛날 뿌리서점 사진. ‘책이 주인을 기다립니다’ 현판이 걸려 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의 표지에 수록된 옛날 뿌리서점 사진. ‘책이 주인을 기다립니다’ 현판이 걸려 있다.

이번 책방축제에 참여하는 한 책방의 초청으로 온 김에 우리 책방에 들렀다는 그가 돌아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그 안에는 전부터 갖고 싶었던 책인데 아직 인연이 없었던 900쪽짜리 책이 들어 있었다. 바로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으로, 전작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2004)에 이어 출판된 지은이의 두 번째 헌책방 나들이 기록이다.

그가 2004년 5월부터 2005년 4월까지 1년간 다녀온 헌책방과 그 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책에 관한 얘기를 담은 이 책에는 나도 잘 아는 헌책방들이 많이 등장해서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지은이가 매달 방문한 곳이 바로 뿌리서점이다. 단순히 방문한 횟수뿐만 아니라 책의 표지 사진과 딱 12장만 실린 헌책방 사진 가운데 한 장이 모두 사장님과 함께한 사진이니 그의 뿌리서점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에 수록된 현재 뿌리서점 사진. 항상 ‘태극기’와 ‘단군초상’이 걸려 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 2006)에 수록된 현재 뿌리서점 사진. 항상 ‘태극기’와 ‘단군초상’이 걸려 있다.

‘책은 제 삶’이라며 스스로를 ‘헌책방 버러지’라 부르는 지은이의 헌책과 헌책방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이 책을 보고 있자니, 그때 그 시절의 ‘순수’ 모드에서 이미 대부분 ‘장사치’ 모드로 변질돼 버린 현재의 내 모습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금의 모습보다 왕년의 내 모습이 더 또렷하실 뿌리서점 사장님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까?

몇 해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서울 출장길엔 꼭 한번 찾아봬야겠다.

최종규 작가의 다섯째 헌책방 사진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서울 용산 뿌리서점 2003’.
최종규 작가의 다섯째 헌책방 사진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서울 용산 뿌리서점 2003’.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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