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표현의 힘
섬세한 표현의 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8.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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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 김창열미술관장

김창열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지오름이 있다.

‘저지’의 ‘저’에는 한지를 만드는 닥나무 저(楮)자가 쓰이고 있다. 저지오름의 다른 말 닥몰오름에서도 그 이름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오름은 완만한 경사 없이 높게 솟아 있다. 분화구도 60m에 이를 만큼 깊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멀리 마라도가 보이면 좋으련만 마침 모슬봉이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보다 넓은 가파도가 모슬봉 왼쪽에 걸쳐 모습을 보인다. 물론 날이 맑아야 볼 수 있다. 선명하게 떠 있는 가파도를 보게 되는 날은 반가운 선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왜 남쪽의 섬만을 찾으려 했을까? 제주 본섬과 가깝고 거기에 섬이 보일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약간의 황사가 끼어 있어도 위치를 가늠해 찾으면 그럭저럭 보일 여지가 있는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아주 멀리 수평선 즈음에 있는 섬이라면 똑같은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황사가 없지 않던 엊그제, 저지오름에서 선명한 수평선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날 반대쪽의 북쪽 바다는 그 와중에 수평선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저지오름 북쪽에는 일명 망오름이기도 한 느지리오름이 있다. 그것이 수평선 일부를 가리긴 했지만 그 오른쪽으로도 수평선이 보인다. 그리고 이윽고 보이는 바다 위에 툭툭 떠 있는 섬들….

함덕해수욕장 근처에서 처음 보았던 북쪽의 섬들을 제주 어디에서도 볼 수 있다는 걸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지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섬들이 떠 있다. 느지리오름 왼쪽으로 수평선보다 아래에 불쑥 솟아오른 섬은 관탈도일 거다. 그 뒤 수평선 위로 늘어선 섬들은 추자도가 분명하다. 게다가 느지리오름 오른쪽으로 걸쳐있는 섬도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수평선 위로 조금 사이를 두고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아래 보길도일까. 지도를 확인하니 바로 보길도의 위치다. 보길도의 산 높이가 431m에 이르니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을 그리는 섬세한 눈은 보이지 않는 경계까지 깊이 관찰하고 표현한다. 그림만큼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사진 예술은 어떨까.

사진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얻는 성과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의 일출 같은 어떤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수십 번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계절과 시간과 날씨와 안개가 끼고 걷히는 조건들을 따져야 하는가. 새해 일출의 장엄하고 찬란한 순간 포착은 숱한 조건들과 수많은 등반과 촬영 기술 조율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와 같은 과정에 숨어있는 여러 변수와 난제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곤 한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진도 표현이라고 하는 건 이런 이유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모든 표현은 섬세한 시선을 우선 필요로 한다. 유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E. H. Gombrich)가 썼던 말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요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로 회자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한 세부에서 악마는 신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예술혼을 자극한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물방울이 가장 강력한 한국미술의 명장면이 된 것은 자연 속에서 알 수 없는 미와 숭고의 의미를 찾았던 칸트(I. Kant) 미학의 발견만큼이나 값진 유산이 되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김창열의 물방울, 그것은 자연이 이끄는 시선과 예술이 가리키는 미학의 환상적 앙상블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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