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코로나19 사전예약’
희망고문 ‘코로나19 사전예약’
  • 부남철 기자
  • 승인 2021.07.21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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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도 이런 희망고문이 없다. 그리고 이런 비효율적인 예약 시스템도 처음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 사전예약 시스템을 직접 겪어 보니 우리나라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의구심만 늘어났다.

50대인 기자는 20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전예약 해당자여서 이날 오후 8시 예약 시스템에 접속했다. 바로 접속이 안 됐지만, 5분 만에 접속이 됐고 기자 앞에 6000명 정도 있었다. 

그동안의 보도와는 달리 잘 되는구나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500명쯤 남았을 때 갑자기 초기 화면으로 돌아갔다. 다시 접속한 후 2시간30분을 기다려 오후 10시30분쯤 대기자가1000여 명이 되는 순간 또다시 초기 화면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래도 기다리면 되겠지 하고 다시 접속 후 11시56분 드디어 10명이 남았는데 갑자기 초기 화면이 나타나면서 입에서는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같이 예약을 위해 접속하던 아내도 기자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서 짜증을 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되고 여름 휴가철을 맞아 연일 3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으면서 도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백신 접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이와 같이 정부의 백신 접종 시스템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얻으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감이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세밀하지 못 한 정책 탓에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방역 당국은 시민들로부터 온갖 불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사기는 최악을 걷고 있다. 

21일 0시 기준으로 제주의 신규 확진자는 34명으로 코로나 발병 이후 최대를 기록하며 제주 사회의 불안감은 극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성률, 감염 재상산 지수, 감염경로 불투명 환자의 비율 등 관련 지표도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접종 사전예약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선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당연히 접속자가 몰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단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12일 0시부터 만 55~59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전예약에서 예약시스템이 ‘먹통’이 돼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후 만 53~54세에 대한 사전예약이 지난 19일 시작됐지만, 또다시 예약 시스템상에 오류가 발생했다.

예약 시작 초반부터 접속이 지연된 것뿐 아니라 53~54세가 예약을 시도하는데도 ‘대상자가 아니다’는 문구가 표시되며 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잇따랐다.

질병청은 전날 사전예약의 안정적 진행을 위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등 총 두 차례에 걸쳐 누리집 이용을 차단한 채 사전 점검을 했으나 접속은 여전히 원활하지 못했다.

질병청은 클라우드 서버를 긴급 증설한 뒤 2시간 후인 오후 10시쯤 사전예약을 재개했으나 접속 지연 현상은 한동안 반복됐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어제 오후 8시에는 클라우드 서버가 동시접속자 처리를 하지 못해 (지연이) 발생했다”라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 클라우드 도입을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질병청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계속 반복됐다.

이런 와중에 컴퓨터 시스템 시간을 임의로 조정하거나 웹 브라우저의 ‘개발자 모드’에서 설정을 변경하는 등 비공식 통로를 이용하면 대기열을 뚫고 단번에 예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글이 인터넷에 다수 올라와 성실(?)하게 접속을 한 대다수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미증유의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예약 폭주는 예견됐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안이한 판단이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돌려막기식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코로나19 방역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을 때 발생할 혼란은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린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는 어느 일방의 노력과 희생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총괄하는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 한다면 정부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정부의 환골탈태를 기대한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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