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과 멸치
된장국과 멸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7.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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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냄비에 다시 멸치 몇 마리를 넣어 가스 불에 올린다. 냉동실에서 얼려둔 얼갈이배추를 꺼낸다.. 멸치가 냄비 안에서 춤을 출때 배추가 들어가 몸을 푼다. 이어서 집 된장 한 숟가락이 국물을 휘어잡는다. 마지막에 잘게 썰어진 청양고추도 따라 들어간다. 알싸한 된장국 한 그릇을 비우며 코로나 시국에 오늘도 성심껏 살아냈다고 자신을 격려한다.

별다른 반찬이 없을 때나 해장이 필요할 때, 속이 답답할 때는 된장국을 끓인다. 된장국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아서 좋다. 주로 배추, 무를 넣지만, 봄철에는 냉이나 달래국을 끓이면 계절 맛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밥상 위에는 늘 된장국이 있었다. 어머니는 직접 키운 채소와 손수 담근 된장으로 구수한 된장국을 끓였다. 육수를 내기 위해 굵은 멸치 몇 마리를 넣고 끓이다가 배추를 넣고 된장을 채로 걸러서 풀어 놓았다. 멸치는 건져내지 않아서 국그릇에는 육즙이 다 빠진 멸치까지 담겼다.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가 하던 대로 된장국을 끓였다. 국그릇에 있는 멸치를 보며 “당신은 멸치도 생선이라고 생각하나 봐.”라는 남편의 말에 “촌에서는 멸치도 생선이라 생각하지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된장국 끓이는 방법이 달랐다. 시어머니는 멸치를 건져내는 대신 된장은 거르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멸치는 그대로 두고 된장은 채로 걸렀다. 시어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그 당시에 시어머니에게는 된장이, 어머니에게는 멸치가 더 귀한 재료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 때 나는 장화를 신고 삶은 콩을 밟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즐겁다. 그 때를 생각하며 집된장을 만들어 보겠다고 콩을 삶아서 메주를 만들었다. 틔운 후 된장을 만들었는데, 쓴맛이 나는 된장이 되어버려 마음이 아팠다. 그 후 된장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작년에는 홈쇼핑에서 메주와 그에 따른 모든 재료를 사다가 설명서대로 했더니 그런대로 맛있는 된장이 되었다. 발효과학의 힘이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방식을 모두 따른 된장국을 끓인다. 양가의 방식을 모두 접수한 셈이다. 멸치도 건져내고, 된장도 걸러낸 된장국이 우리 집 된장국이다. 거기에다 다시마, 마른 새우 등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하니 된장국도 진화하고 있다. 

오래 묵은 된장이 더 깊은 맛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깊이를 알게 된다. 오래오래 함께한 친구들, 가족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특히 부부간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돌아 본다. 늙어가며 비천한 상대가 아닌 익어가며 존귀한 상대로 서로를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더 깊은 맛을 내는 된장국 같은 부부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이 발효되고 숙성되는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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