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진입 이후를 고민하자
선진국 진입 이후를 고민하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7.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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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지난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격상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하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힘겨웠던 우리의 지난날과 오늘을 비교하며 감격한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쉼 없이 달려온 우리의 지난 세월을 역사의 눈을 통해 담담히 바라보는 계기도 마련했을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국민의 뼈와 살을 갈아 넣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생애를 같이한 ‘산업화 세대’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선(先) 세대들이 빵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른바 ‘87체제’를 만든 ‘민주화 세대’는 민권의 문제를 선진화시켰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나라라는 얘기다.

선진국의 마지노선이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 3만 달러를 달성한 나라 중 우리처럼 ‘글로벌 넘버원’ 제품을 많이 보유한 나라도 흔치 않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세계의 IT 시장을 우리 제품이 휩쓸고 있다.

‘글로벌 넘버원’은 이뿐만 아니다. ‘불멸의 밴드’ 비틀스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20대 방탄소년단(BTS)이 런던에서 공연할 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우리의 노래를 우리말로 ‘떼창’하는 모습을 보았는가. 토트넘의 손흥민이나 18살에 골든볼을 안은 이강인 선수가 맹활약하는 경기를 보았는가. 우리는 이들의 활약에 탄성했다. ‘이런 멋진 새 세대가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한국인들은 빵의 문제와 민권의 문제를 함께 이루었다는 점에서 감히 ‘한국 민주주의는 전후 세계가 피워낸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내재적 큰 불안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단순히 선진국이 되었다고 열광할 일만은 아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우리가 이룬 산업화나 민주화는 이미 선진국이 된 나라들의 발전 모델을 따라서 배우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 우리나라가 준거해야 할 국가 모델은 없다. 오직 우리 스스로가 우리 여건에 적절한 발전 모형을 창조해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적 고통과 통합이 수반된다. 그리고 상당한 독창성과 창의성이 요구된다. 참고해야 할 교과서도 흔치 않다.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미국이나 일본, 영국 같은 나라들도 적정한 빌전 모델을 탐색 중에 있을 뿐이다. 예컨대 이들 나라도 양극화나 저출산 문제에 보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은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 개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도 고민이다. 혹자는 통합 개념을 선진화라고도 하고, 개인화라고도 한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문명화라고 일컫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 정해진 개념 모형은 확립되지 못한 실정이다.  

산업화나 민주화만으로는 선진국 이후 우리나라의 현안들을 해결할 수 없다. 이런 주장만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과거로 우리나라를 돌려놓겠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아직도 산업화나 민주화의 주도세력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화석화 돼가고 있는 그 주의, 주장은 이제 박물관에 갈 때가 됐다.

30대 야당 대표와 20대 야당 대변인의 출현은 이 시대 구분의 신호등이다. 이 시대 구분은 여당 속에서도 짙어질 것이다. 또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은 이 시대 구분의 전환점이 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들이 이 나라의 공로자들이었던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원가 상환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주의, 주장이 역사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내년 3월 대선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 탈(脫)이념의 리더십, 그리고 2030 새 세대의 미래를 키워줄 문명사적 안목이 매우 높은 후보가 필요하다.

그 전환 시대를 이끌 새 시대의 후보가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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