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신비의 호수…신이 머물다 간 성지
짙푸른 신비의 호수…신이 머물다 간 성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7.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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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 힌두교 성지 고사인쿤드를 찾아서(2)
고사인쿤드 전경. 시바 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때 머물렀다는 설화가 숨 쉬는 곳으로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다.
고사인쿤드 전경. 시바 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때 머물렀다는 설화가 숨 쉬는 곳으로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다.

■ 시바 신 설화 숨 쉬는 신성한 호수 
고사인쿤드(Gosainkund·코사인쿤도)는 주갈 히말 남쪽 사면 위 샤브루(Syabru VDC)의 해발 4380m에 있는 신성한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시바 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때 머물렀다는 설화가 숨 쉬는 곳으로,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입니다. 

이번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매일 랑탕 계곡에서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는데, 어제는 그야말로 조용한 산속에서 포근한 잠을 잤습니다. 물론 소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포근한 잠을 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언덕에 올랐으나 마치 미세먼지가 덮인 것처럼 온 산이 뿌옇게 하늘을 망가뜨린 분위기입니다. 잔뜩 기대했는데, 특히 얼마 전 큰 산불이 나서 아직도 연무현상이 심각하답니다. 

오늘도 계속 가파른 산을 오르다 중턱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날 고사인쿤드에 오르기 때문에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걸으면서 랑탕 히말 연봉들을 볼 수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조금이라도 명암이 있을 때 촬영하려고 서둘러 나섰습니다.

고도가 높아 올라갈수록 만년설이 쌓인 산들이 넓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새벽에 올랐던 언덕보다는 연무현상이 심하지 않아 사진 찍기에 괜찮지만, ‘저 계곡 사이로 구름이 흘러갔으면’하고 그림 같은 상상을 해 봅니다. 

종잡을 수 없는 산 날씨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인지 출발할 때까지 맑았던 날씨가 오를수록 안개가 짙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비를 맞다니? 이런 고지대면 눈이 내려야 할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5월 하순, 여기는 여름으로 접어든 시기라 비가 많이 내리는 기간이랍니다.

비는 다음 날까지 이어져 이런 날씨에는 올라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하루를 푹 쉬자고 해 드러누웠으나 잠을 잘 수가 없어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며 야생화를 찾아다녔습니다. 안개비에 젖은 고산 야생화들이 아름다워 해가 질 때까지 촬영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고사인쿤드로 가는 길. 이토록 가파르고 험준한 산길을 사흘간 오른 끝에 고사인쿤드에 이르렀다.
고사인쿤드로 가는 길. 이토록 가파르고 험준한 산길을 사흘간 오른 끝에 고사인쿤드에 이르렀다.

■ 사흘간 힘들게 오른 힌두 성지를 뒤로하고
다음 날 새벽에 밖에 나가 보니 날씨가 쾌청해 카메라를 들고 언덕에 올랐습니다. 멀리 랑탕 히말라야 설산들이 선명하게 보여 이번 트레킹 중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답니다.

해가 떠오를수록 산 능선 실루엣이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자 순간, ‘와~’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가파른 능선을 오르다 뒤돌아보며 찍고, 또 오르다 뒤돌아보면 다른 모습처럼 보여 촬영하다 보니 필름 몇 롤을 찍었는지 모릅니다.

정신없이 촬영할 때는 지친 줄도 모르게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데, 어느 정도 촬영을 마치면 온몸이 파김치가 된 듯합니다. 오를수록 경사는 심해져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어 잠시 쉬고 있으니 가이드가 다가와서는 “조금 천천히 올라가세요. 너무 빨리 걷는 것 같네요”라며 점심으로 김밥을 건네줍니다.

이 자리에서 다 먹고 올라가라는 그의 말에 김밥을 꺼내 들었는데 살짝 쉰내가 올라옵니다. ‘뭐, 괜찮겠지’하고 먹었는데 결국 올라갈수록 뱃속이 부글거려 고생했습니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고사인쿤드를 바라볼 수 있는 고개 끝 지점에 올랐습니다. 넓은 평지에는 집 울타리처럼 쌓은 돌담이 여러 개 있는데, 이것이 힌두 축제 때 올라온 신도들이 잠을 자는 임시 거처로 고산에 매서운 바람을 막아 준답니다.

멀리 가파른 산 능선을 가로지르는 험준한 길이 위험스러워 보이는데, 순례객들이 그 길을 따라 올라온다고 합니다. 성지로 가는 길은 험준하고 힘든 고행의 길이라서 순탄치 않습니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 탓에 계속 뱃속이 울렁거려 걷기가 무척 힘들어 ‘여기서 하산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 먼 곳까지 왔는데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포기할 수 없어 배를 움켜쥐고 계속 걸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힘없이 걷기를 한참, 어느새 눈앞에 고사인쿤드가 나타났습니다. 시퍼런 물이 가득한 호수는 무척이나 신비스러운 모습입니다. 호수 주변으로 여러 갈래 길이 보이는 것으로 봐 아마도 다른 호수로 연결된 코스가 있는 모양입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해발 4380m 이 산에는 크고 작은 108개의 호수가 있고, 그 중 가장 큰 이 고사인쿤드에 시바 신이 한때 머물렀다고 힌두교도들은 믿고 있다고 합니다.

네팔 힌두교도들은 매년 8월 이곳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얼마나 많은 순례객이 몰리는지 숙박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추위와 고산증세로 몇 명씩 죽음을 맞기도 한다고 합니다. 호수 주변에 트레커 숙소인 로지(lodge)가 몇 개 보이는데,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서 한가한 모습입니다.  

가파른 산을 사흘간 올라 찾아온 고사인쿤드. 힌두교도는 아니지만, 이곳이 성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인간 본연의 마을일까요. 힘들게 오른 힌두 성지, 아쉽게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또 다른 오지를 향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큰 산불이 났던 현장에 새로 야생화가 피었다.
큰 산불이 났던 현장에 새로 야생화가 피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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