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7.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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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욕심 덩어리들은 나의 집착이었다. 하루에 한가지씩만 비워내도 될 일을 오래도록 미루어 온 터다. 중간에 재활용으로 조금 비워낸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 빼내기는 멈춘 상태다. 쓰지 않는 그릇들도, 입지 않는 옷들도 관심이 없으면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편이 좋을 텐데, 부질없는 욕심에 계속 품고 있었다. 음식물쓰레기처럼 왜 쉽게 처리하지 못하는가.   

신년 새 아침이 밝았을 때의 다짐은 사라졌다. 무소유의 출발 원년으로 삼아 과감히 비우리라 각오했건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부질없는 집착이었으리라. 한때 소중한 재산처럼 순번을 부여했던 것들도 지금은 혼이 빠져버린 모습으로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이겠다. 

전자 북 시대다. 외국어를 배워보겠다고 한 권씩 사들였던 도서들도 시든 낙엽처럼 누렇게 변한 모습이다. 펼쳐봐 주지도 않으니 영혼 없는 뼈다귀 같다. 한때는 열정을 쏟았던 벗들이었는데 손길이 끊어져 처량한 신세다. 책을 구하기도 어렵던 시절, 외국에서 사들인 것들도 있다. 지나온 내 청춘의 흔적들이다. 젊은 시절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어찌하여 아직도 끌어안고 있단 말인가.  

실행을 위하여 우선 표어부터 정하면 어떨까. 멋진 문구가 떠올랐는가 싶더니 ‘미니멀 라이프’라는 유행어만 어설프게 머릿속을 헤집는다. 표어 따위 집어치우고 책장부터 정리해야지 마음을 다져 먹었다. 여러 날이 흘렀다. 참을 수 없는 더위에 선풍기를 켜기도 했다. 생각처럼 단번에 정리를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책들과 씨름하는 사이에 책장은 어느새 빈 곳이 생겨났고 허전함과 상쾌함이 함께 드나들었다. 

어느 날 옷을 정리할 계획을 앞둔 나에게 지인은 자신이 입던 옷을 전해준다.  따뜻한 인정미가 느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줄 만한 것을 열심히 챙겨봐야 할까 보다.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되리라. 주는 것은 버리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기에 줄 수 있을 때 주어야겠다.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목적이 생겨난 듯하다. 

소중한 것이라 여긴 것들이 종국에는 다 부질없는 것으로 변할 터인데, 물질 만능에 휘둘리는 삶이 허무하기만 하다. 집착이 자신을 얼마나 피폐화시키는지 알 것 같다. 소유욕보다 더 소중한 것이 존재인 것을 잊고 있었다. ‘소유냐 삶이냐’하는 선택의 기로다. 이제는 집착을 떠나보내려 한다. 비워진 만큼 존재를 증명할 인생 2막의 새로운 희망을 떠올려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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