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7월 청포도
내 고장 7월 청포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7.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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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시 한 수 보자. 총 6연(각 2행)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내용상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볼 수가 있다. 1~3연까지의 내용이 청포도가 익어 가는 내 고장 칠월의 자연적 배경이라면, 제4~6연까지의 내용은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작자의 마음으로 요약된다.

나라를 잃고 먼 이역 땅에서 고국을 바라다보는 시적자아(詩的自我)의 안타까운 마음과 향수, 그리고 암울한 민족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에의 기다림과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우리는 맑고 밝은 톤(音調)과 청신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청포도’·‘하늘’·‘푸른 바다’·‘청포’와 같은 푸른 빛깔과 ‘흰 돛단 배’·‘은쟁반’·‘하이얀 모시수건’과 같은 흰 빛깔의 대응으로 표상되는 투명한 서정성과 간결하고 응축된 시상의 짜임새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청포도’와 ‘전설’과 ‘하늘’의 이미지를 ‘주저리 주저리’와 ‘알알이’로 연계시킨 이음새도 자연스럽거니와 이들의 결합으로 형성된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다.

더구나 바람조차 의인화하여 가슴을 열게 한 표현 기법은 시적 형상화에서 고도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 곧 ‘나’와 ‘그’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제기되고 있다. ‘손님’을 육사 자신으로 보고 분열된 한 영혼의 양면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손님’을 그대로 객체화하여 민족적 현실의 극복을 염원하는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청포도를 먹게끔 마련된 식탁에서 정성스럽게 맞이할 손님은 청포를 입고 고달픈 몸을 이끌고 오는 귀한 존재로서 육사가 끝없이 기다리는 염원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요컨대 이 시는 ‘청포도’라는 한 사물을 통해서 느끼는 작자의 고국으로 향하는 끝없는 향수와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염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곧 나이를 한 살 더 먹겠지. 아, 무정타 생각을 말자. 인간은 약간은 비겁하고 약간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다. 지난 6개월이 만약 그러했다면 새로운 반은 좀 더 신선하고 좀 더 진지해지면 어떨까 싶다.

장마가 시작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7월이다. 7월은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절이다. 우리가 ‘내 고장 7월은’이라고 말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이육사의 ‘청포도’이겠다. 이쯤 되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반가운 친구 만나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켜며 추억을 떠올리다 시 한 수를 기억나는 데까지 읊어본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여기까지는 대충 낭송한다. 잠시 후 한 잔 더 마시고 7월을 얘기하다가 마저 생각이 났는지 끝부분을 읊어댄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우리가 잘 아는 시 ‘청포도’는 전체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경건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달프고 무망(無望)한 민족에게 정서적이면서도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했고 그렇게 해서 삭막한 갈등을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고향을 생각하며 다시 평화롭고 화해로운 인간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소망과 의지를 ‘청포도’에 담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청포도’는 전설과 꿈이 충만되는 관념적인 과일로 나타나 있으며 풍성하고 평화로운 삶을 상징한다.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자 이육사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끌고 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평화로운 삶의 세계가 다가오는 그리움을 뜻한다. 시구 중에 ‘내가 바라는 손님’은 민족을 구원하고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초인적인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고달픈 몸’은 어두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겪는 괴로운 삶을 말한다. 청포도가 그립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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