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힐 듯한 만년설산 뒤로하고 그리운 岳友와 작별
손에 잡힐 듯한 만년설산 뒤로하고 그리운 岳友와 작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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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네팔 최초 국립공원 랑탕 히말라야를 가다(5)

■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랑탕 리룽 정상을 바라보며 밤새 꿈을 꿨다가 깨기를 몇 차례, 비몽사몽 눈을 뜨고 밖에 나가 랑탕 리룽 만년설 어느 곳엔가 잠들어 있을 김진현 악우(岳友)를 소리쳐 불러 보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속으로 ‘진현아, 좋아하는 산속에서 영면하거라. 먼 훗날 꿈속에서라도 산에서 만나자’라고 전달되지 못할 공허한 약속을 날려 보냈습니다.

오늘은 랑탕 히말 트레킹 끝 지점인 강진곰파라는 마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코스랍니다. 랑탕 계곡의 시작점이기도 한 강진곰파는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전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난생처음 히말라야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모습을 본다는 기대에 카메라를 단단히 준비하고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티벳과 산맥 하나로 국경을 이룬 랑탕 마을은 ‘작은 티벳’이라고 할 정도로 티벳 문화가 잘 보존된 마을입니다. 오르면서 보니 왼쪽으로는 랑탕 리룽을 받친 거대한 절벽이 웅장하게 서 있고, 오른쪽에는 계곡 따라 빙하가 흘러내리는 넓은 벌판에 크고 작은 바위가 수없이 널려있습니다. 바위 사이를 돌다 보면 이름 모른 고산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이 꽃들을 촬영하느라 힘든 줄 모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작은 오솔길 가운데 불교의 진언을 새긴 마니석을 길게 쌓아놓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의 강한 불심이 전해지는 한편 티벳 불교의 영향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이 마니석을 보며 여행길에 마음의 위안으로 삼기도 하고, 또는 자신도 모르게 불경의 한 구절을 외기도 한답니다. 티벳 사람들이나 네팔사람들은 크고 작은 돌에 ‘옴마니밧메훔’ 진언을 새겨 이렇게 쌓아놓고 불교의 진언이 널리 퍼져가기를 기원한답니다. 티벳은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힌두교 신자가 많은 네팔에서는 히말라야로 가는 깊은 산 속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꼭 다시 오겠네’

오르면서 랑탕 리룽 정상을 바라볼 때마다 ‘김진현 악우가 저기 어딘가 있겠지’하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강진곰파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집마다 호텔 간판이 걸린 것을 보니 이곳은 주로 트레킹을 온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숙박업소 마을인 듯합니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너무 일찍 왔는지 마을에는 짐을 실어 나르는 나귀들뿐이고 사람들을 볼 수가 없어 한참 동안 어리둥절했습니다. 여기가 끝인지, 더 올라가야 할지 몰라 집안을 기웃거리는데 한 여인이 나오길래 “강진곰파?”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강진곰파 뒤쪽 언덕에 있다는 체르고리 전망대를 찾아보려 했으나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눈앞에 있는 돌무더기 산 위에 거대한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들이 펄럭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너머로 랑탕 리룽 정상이 가까이 보일 것 같아 얼른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작은 돌무더기를 위험스럽게 올라 도착해 보니 타루초와 어우러진 랑탕 히말 연봉을 촬영하기에는 최고의 자리입니다. 조금 더 오르면 좋은 앵글이 나올 것 같아 계속 가다 보니 꽤 멀리 올라왔는지 강진곰파 마을이 아련히 보이고 멀리 우리 일행이 걸어오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니 랑탕 리룽 정상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여 순간, ‘그 험한 바위틈으로 오르지 말고 여기로 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래서 소리를 지르며 손짓하는 게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듯 보여 혹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싶어 부지런히 내려왔더니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불렀답니다.

좀 더 촬영할 걸 괜히 서둘렀다고 중얼거리며 가이드에게 “랑탕 리룽 등정을 강진곰파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 그 험한 암벽 사이로 오르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랑탕 리룽 남서능 코스는 그쪽으로 가야만 한다. 이쪽은 다른 방향”이라고 설명해줘서 그제야 이해가 됐습니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하산한다기에 “체르고리 전망대 안 가느냐”고 했더니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하산해야 한답니다. “아까 언덕에라도 올라갔다가 오길 천만다행이지, 랑탕 히말 트레킹 최고 포인트를 못 보고 하산할 뻔했다”고 푸념하자 “내일부터 오를 코사인쿤도 코스에서 랑탕 히말 전경을 볼 수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이틀에 걸쳐 올라왔던 길을 오늘 한낮에 내려가 숙박할 것이니 서둘러야 한다며 하산을 재촉합니다. 내려가는 동안 랑탕 리룽을 바라보며 속으로 ‘시간이 된다면 꼭 다시 오겠네’하고 아쉬운 마음을 바람에 담아 그리운 악우에게 전해봅니다. 사흘간의 랑탕 히말 트레킹을 마치고 내일부터 오를 힌두교 성지인 코사인쿤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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