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한 알에 담긴 별무리
옥수수 한 알에 담긴 별무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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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귀농을 시작한 지 5년차 되는 제부로부터 긴급구조 요청이 왔다.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우리 부부에게 도움을 청했을까 싶다.

일요일을 기다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밭 번지를 입력 시키고 김밥과 커피로 차안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바쁜 동생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주고 싶어서다.

보슬비가 살포시 내리는 아침에 안개를 뚫고 도착한 초당옥수수 밭, 제부에게 속성으로 잘 익은 옥수수 따는 법을 배운 후 고랑을 따라 옥수수를 따서 마대에 담는다. 정량을 맞추어 실한 옥수수만을 골라 딴 다음 택배기사가 오는 열한시까지 박스 포장을 마쳐야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 판매하는 상품이기에 신용이 더욱 중요하다.

품질이 좋은 것만 골라서 따라는 주의사항을 새기며 우리 부부는 작업을 시작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제부의 노력을 보는 듯 손길 닿는 옥수수마다 옹골차게 실하다. 작업하는 내내 기쁘고 흐믓해진다.

예전에는 농사만 짓고 농협에 수매하든가 상인에게 밭떼기로 팔면 끝이었다. 올해부터는 요즘의 젊은 농부들 답게 온라인으로 주문 받아 판매하는 것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친절한 전화 응대는 기본이고, 동생부부가 일일이 리뷰에 댓글 달며 제 날짜에 맞추어 발송하고, 늦은 시간까지 운송장 확인을 해야 한단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혹여, 한 개라도 부족하다고 클레임 들어오지 않도록 세고 또 세어 확인한다. 차곡차곡 택배박스에 담는 손길에 정성이 한껏 더해진다.

알차게 일을 마치고 품삯으로 받아 온 초당옥수수를 삶아 내어놓으니 남편은 한 알씩 떼어 입에 넣으며 유년의 기억을 펼쳐 놓는다.

한여름 날 평상에 누워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먹던 옥수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노라 이야기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돌이켜보니 어릴 적에는 찐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 헤매곤 했다. 너무 익어 딱딱해진 옥수수를 한 알씩 떼어 꼭꼭 씹으면서 별을 찾는다.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질 즈음 북두칠성에서 카시오페이아로 눈길이 가 있곤 했다.

초당옥수수를 한 알 두 알 입에 넣으며 따뜻한 부모님과 유년의 형제들과 장난꾸러기 친구들. 마당에 누워 찾아보는 한여름 밤의 무수한 별무리를 그려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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