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감님과 오월의 냉면
94세 감님과 오월의 냉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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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전 서울시교육청 초대공보관·논설위원

어김없이 5월이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돌아옵니다. 감님과 만나는 달입니다. 5월 22일 토요일에 점심을 함께 하려 합니다. 박 사장이 감님과 통화를 했는데, 걷는 게 힘드셔서 승용차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압구정동역 2번 출구에서 조금 걸으면 한일관이 나옵니다.”

D일보의 논설실장을 지낸 S기자의 문자 알림이다. 

이날 점심에 해마다 만나는 4인 모두가 찬성했다. 제12대 서울특별시교육감 재임 시절에 시교육청을 출입한 기자들이다. 기자들은 ‘교육감님’을 그냥 ‘감님’이라고 존칭한다. 언론사마다 인사 기준은 좀 다르나 기자들은 출입처에 6개월~1년 정도 취재한다. 

출입기자 4인은 
감님의 재임 시기에 교육청에 같이 출입했다. 앞에서 소개한 S논설실장, Y뉴스의 보도국장·상무·대표이사를 지낸 P씨, H일보의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역임한 L기자, J일보에서 논설위원과 본부장을 지낸 K기자 등이다. 이들은 감님께서 1992년 40여 년의 공직에서 퇴임한 후부터 매년 5월 스승의 날을 전후해 주로 냉면집에 감님을 초대한다. 그러한 일이 벌써 30여 년에 이르렀다. 

필자는 교육감님 재임 때 공보관으로 보좌했다. 당시에 출입기자 20여 명은 수시 교체한다. 떠나도 인연은 계속된다. 공보담당자의 보람이기도 하다. 4인은 이렇게 오랜 세월 감님을 스승처럼 잊지 않고 모셨다. 필자도 늘 참석했다.

모임 연락을 맡은 S실장은 교육월간지 기고에서 “해마다 5월이 되면 1980년대 후반 교육담당 기자로 일했던 4개 언론사 기자들이, 처음에는 취재원으로 만났으나 지금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을 초대해 점심을 함께한다”고 술회했다. 

교육감의 덕망과 존경
이들은 중앙일간지의 편집(보도)국장과 논설실장을 지낸 중견언론인들이다. 무엇이, 그 어떤 사유가 있길래 헤어진 감님을 존경하고 모시는 걸까? 감님은 사대를 나와 국민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중·고교 교사·교감·교장, 장학관, 과장, 국장, 부교육감을 두루 보임했다. 문교부 장학실장, 인천교대 학장, 강원도교육감, 문교부 차관(1987)을 역임한 후 서울시교육감(1988~1992)을 지냈다.

감님은 출입기자들에게 수도 교육의 문제와 해결 방안을 놓고 진솔한 대화를 한다. 꾸밈이 없으셨다.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감님은 학생들이 타고난 소질과 적성에 따른 교육, 전인교육을 독려했다. 교장·교사의 사명감을 강조하면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 그 자체가 전인교육의 출발점이다’라고 역설한다. 공정한 교원인사, 학교의 교육시설 확충에 교육행정을 폈다. 

출입기자는 감님에게서 교육자의 진면목을 찾았고 인격과 덕망을 본받았다. 그래서 교육청을 떠나도 늘 존경했다.

감님은 이날 점심을 끝낸 후 떠나면서 “해마다 빠짐없이 초대해 주니 고맙네”라고 말했다.
                
‘우리 집안 이야기’에서 
퇴임한 감님은 여가를 활용하여 40여 년의 교직에서 얻은 바를 담은 에세이 형식의 저서를 냈다. 

‘장학산고(奬學散稿)’(1992)는 ‘한 개인이 남이 알게 모르게 겪었던 장학에 관련한 경험담’이다. ‘그래도 우리 교육은 돌아간다’(2011)에서는 ‘▲우리 학생들은 똑똑하다는 데 있다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열이다 ▲우리 교사들의 빼어난 (고학력) 자질이다’라고 희망을 제시했다. 

감님이 쓴 ‘우리 집안 이야기’(2007) 끝에 이런 글이 있다.

“너희 뜻대로 살아라. 그렇지만, 너희들이 속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라.”

감님께서 강녕하셔서 내년 5월에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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