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랑탕 리룽 세계 최초 등정…아직 돌아오지 못한 제주 산악인
겨울 랑탕 리룽 세계 최초 등정…아직 돌아오지 못한 제주 산악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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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네팔 최초 국립공원 랑탕 히말라야를 가다(4)
랑탕 리룽 정상 모습. 1992년 12월 한국 설암산악회 원정대 김진현 산악인은 세계 최초로 동계 랑탕 리룽 정상 정복에 성공했으나 하산 도중 셰르파의 탈진과 눈사태로 실종 사고를 당했다.
랑탕 리룽 정상 모습. 1992년 12월 한국 설암산악회 원정대 김진현 산악인은 세계 최초로 동계 랑탕 리룽 정상 정복에 성공했으나 하산 도중 셰르파의 탈진과 눈사태로 실종 사고를 당했다.

■ 그리운 악우(岳友)
김진현 악우(岳友)의 추모비를 다녀와 적적한 마음에 술을 마셨더니 별난 꿈을 꾸었답니다. 전혀 얼굴도 모르는데 김진현 악우와 함께 랑탕 리룽 위험한 절벽을 오르다 미끄러진 순간, 꿈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별들이 쏟아질 듯 아름다운 밤, 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물끄러미 랑탕 리룽을 쳐다보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김진현 악우가 ‘선배님~’ 하고 소리치며 달려올 것 같은 상상 속으로 빠져듭니다.

김진현 산악인의 조난사고에 대해 당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등반보고서와 당시 등반대원의 증언으로 사고 경위를 알아보겠습니다.
 

■ 김진현 산악인 조난사고 경위
한국 설암산악회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992년 11월 13일부터 12월 30일까지 동계 랑탕 리룽 남서능(해발 7234m) 세계 초등 목적으로 이종량 대장과 주정수, 김진현, 김용수, 김형우, 이창백 등 6명의 대원을 구성해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이 원정을 위해 1년 동안 한라산에서 극기훈련을 거친 후 출발해 등정에 나섰으나 현지에 도착했을 때 많은 눈이 내려 등반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답니다.

B.C 캠프로 올라가는 길은 장대하게 펼쳐진 절벽 틈 사이 어딘가로 가는 길이 있다는 현지 주민의 말을 듣고 선발대가 출발해 절벽 중간에 오솔길이 있어 위험지역에 고정 로프를 설치하며 본격적인 등반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랑탕 B.C로 가는 길이 험하고 눈까지 내려 포터들이 겁을 먹어 선뜻 나서지 않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답니다. 12월이 되면서 눈은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B.C에 도착해 전진 캠프 설치작업에 들어가면서 정상 공격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12월 12일, 캠프4를 설치했으나 강풍이 몰아쳐 다음 날 바람이 약해질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13일 새벽 6시 정상 등정을 위해 나섰으나 바람이 오히려 전날보다 더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등정을 포기하고 캠프3으로 철수했는데 설치했던 대원용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 버려 그 속에 있던 카메라와 그동안 기록한 필름, 장비 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원들은 B.C에 모여 장비 등을 재점검한 후 17일 공격조가 전진 캠프4로 출발해 18일 새벽 4시 정상 등정을 시도했습니다. 

날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에도 정상 부근에는 여전히 옆은 구름이 덮여 있었지만, 김진현 대원과 셰르파 2명은 정상으로 출발해 남서능 릿지 마지막 암봉을 넘기 직전까지 무전 연락을 했습니다. 그 후 연락이 끊겨 모든 대원을 초조하게 했습니다.

오후 1시 애타게 기다리는 B.C로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는 김진현 대원 무전이 날아왔습니다. 동계 랑탕 리룽 세계 초등의 기록을 세우는 순간입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원정대 대원과 셰르파들이 랑탕 리룽 등정에 앞서 베이스 캠프에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
원정대 대원과 셰르파들이 랑탕 리룽 등정에 앞서 베이스 캠프에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

그러나 그 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하산을 시작한다는 등정조가 아무런 연락도 없고 마지막 암봉 아래로 나타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오후 5시30분쯤 김진현 대원이 무전이 날아왔습니다. ‘셰르파 한 명이 탈진해 늦어지고 있으며 2시간 내로 캠프4에 도착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오후 7시쯤 전진 캠프4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고, 이때 캠프2에 있던 김용수 대원이 김진현 대원에게 안전 상태를 묻자 ‘괜찮다’고 말했답니다.

오후 8시, 산은 완전히 어둠에 잠겼고, 김진현 대원이 ‘캠프4를 못 찾겠다’고 다급하게 연락해 와 모든 캠프에 가스램프를 켜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나 그 후 김진현 대원과 셰르파들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새벽 4시쯤 설상가상으로 2시간 동안 많은 눈이 내려 모든 캠프로 가는 구간의 고정 로프가 눈에 덮여 캠프4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날이 밝아 캠프2에 있는 김용수 대원이 망원경으로 캠프4 부근을 관측했으나 부근 지형이 큰 눈사태로 완전히 변해있고 등정조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난사고를 대비해 군부대 헬기를 요청했으나 현장 날씨가 악천후라 헬기가 뜰 수가 없다는 연락이 와 대원들은 부근을 수색했지만, 캠프4 부근은 큰 눈사태로 완전히 무너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절망적인 소식만 전해 왔답니다.

이후 사흘 동안 구조대를 편성해 수색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어 등정조 3명은 눈사태로 실종된 것으로 판단, 모든 수색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등반 루트 입구에 세워진 김진현 산악인 추모비.

■ 추모비가 전하는 이야기
랑탕 리룽 동계 세계 초등에 성공하고도 셰르파의 탈진으로 불의의 사고를 당한 김진현 대원, 설암산악회는 이후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했으나 지금까지도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계 세계 최초 랑탕 리룽 등정을 성공한 김진현 대원의 산악정신을 기리기 위해 1100도로 어승생 한밝저수지 아래 길가 옆에 세워진 추모비가 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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