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골방(鷹鶻方)’을 아시나요
‘응골방(鷹鶻方)’을 아시나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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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응골방’이라는 책이 있다. 매사육과 매사냥을 위한 지침서로 고려 시대 이조년(1269~1343)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시조의 저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응’은 참매를 말하는데 산악 지역의 매사냥에 이용된다.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분포하며 개체 수가 적다. ‘골’은 매를 뜻하는데 개활지에서의 매사냥에 주로 이용된다.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나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로 개체 수는 적다. 지역에 따라 크기의 편차는 있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덩치가 크다.

매사냥은 201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되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18개국이 참여했다. 이러한 매사냥의 등재 사례는 인류무형유산 공동등재의 모범이 되었다. 공동등재에 참여한 18개 나라의 면면을 보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걸쳐 있음을 알게 된다. 매사냥은 그야말로 인류가 공동으로 만들고 향유해 온 인류문화유산인 것이다. 

유네스코 유산은 세계유산, 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성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유산 14건, 무형문화유산 21건, 세계기록유산 16건을 등재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제주해녀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제주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특수성을 넘어 인류문화로서의 보편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매는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인간이 가장 선망하는 동물로 동서고금을 아울러 최고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대접받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광각과 망원을 넘나드는 뛰어난 시력,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빠른 속도와 비행술, 그리고 강력한 힘을 지녔기에 왕이나 국가, 군대 등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매를 노래한 시나 그림들이 시대를 넘나들며 제작되었다. 하지만 매의 사육과 훈련에 대한 실무 지침서를 제작한 것은 상당한 드문 일이다. 

매사냥이 면면히 이어져 온 배경에는 응사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이와 함께 매의 습성과 특징, 훈련술과 치료법 등 매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이론화시켜 저술로 남긴 우리의 기록문화도 한몫했다. 이러한 기록문화의 중심에 ‘응골방’이라는 책이 있다. 더군다나 이 ‘응골방’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 매사냥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 매는 북방에 사는 종이 덩치도 크고 사냥도 잘한다. 그래서 아시아에서는 몽골 고원과 연해주 지역에 사는 매들이 인기가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연해주와 이어진 함경도 지역이 매사냥의 메카였고, 이 동해안 지역에 사는 매들이 옹골차기로 유명했다. 바로 해동청이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매사냥이 전해진 이후로 일본에서는 매가 권위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었다. 일본에서 이 북방의 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한반도를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와 일본 간의 교류에 매가 중요한 물품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매들은 이렇게 현해탄 넘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 자기의 두 날개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새장에 갇혀 실려간 것이다. 천성 상 매들은 더위와 병에 약했다. 일본으로 가는 장거리 여행 과정에서 많은 매들이 폐사했다. 이들을 관리하는 특별 관청을 두고 사육 전문가를 배치하기도 했다. 한편 매의 관리를 위해서는 매들의 사육과 치료를 위한 지침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조선의 ‘응골방’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조선의 매와 함께 ‘응골방’이라는 책을 요구했던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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