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서 소중한 가치를
사소한 것에서 소중한 가치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5.11.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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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갑자기 동장군이 찾아왔다. 그렇게 반갑게 맞이하고픈 계절손님은 아니다. 왔다가 금방 떠나면 좋겠지만 계절 내내 안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일상을 지배할 것이다. 마치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의 방문을 맞은 며느리처럼 불편을 감수해야한다.

연북로의 가로수들은 예견했는지 이미 월동에 들어갈 채비가 끝난 모양이다. 도로 정비한답시고 뽑히다 남아 자리를 연연하는 느티나무들이 안쓰럽다. 한여름을 시원하게 해주었던 것들이다.

자라 온 몇 년에 얼마를 더하면 숲 터널이 될 수도 있겠거니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면도로가 있는 중앙분리대에 근접한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좌회전이나 유턴할 수 있는 거리가 좁다는 이유에서다.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서 심어졌다가 없애버리는 가로수들의 운명이 애처롭다. 그들이 나고 자란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싹둑 베어져 순식간에 쓰레기처리장으로 향할 것이니.

중앙분리대에 심어지는 나무들은 1m가 채 안된 깊이에 단단한 시멘트 콘크리트 위에서 성장해야 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의 뿌리는 더 이상 땅속으로 뻗어나갈 수가 없다. 무한정 뿌리가 뻗어나갈 경우 도로가 훼손될 수 있다는 논리로 나무들의 생존권을 빼앗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가로수들이 왜 그리 힘없이 쓰러져 사라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성목이 되었을 때 자신을 지탱해줄 수 있는 깊이의 공간은 주어야 할 것인데, 경제적 셈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그만한 여유조차 없다.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던 날 밤, 느티나무의 사나운 울부짖음의 의미를 몰랐다.

공사를 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의지에 의해서 설계했던 것은 아니다. 도로의 위치,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크기와 높이가 정해지고, 편리시설과 공공기관 등이 도시의 거대한 힘에 의해 최상의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 거대한 힘은 도시였다. 도시는 가로수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환경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군상들이 모여서 거대한 기계의 부품 조각처럼 돌아가는 공장과도 같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사람들의 자유를 구속하려 든다.

주요 건물 또는 도로에는 외눈박이 감시카메라가 할 일이 그리 많은지 한시도 쉼이 없다. 일상은 조직의 시스템이라는 쇠사슬에 묶인 채 주변을 떠날 수 없다.

일상에서 일탈하면 물 한 방울 없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어버린다. 마치 주인을 잘못 만난 개 한 마리가 단단한 목줄을 한 채 빈 밥그릇만 바라보는 모습이다.

도시는 사람이 살고 싶은 곳으로 회귀해야 한다. 힘에 의한 속박이라는 틀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랑이 움트는 공동체로 환원하는 것이다. 사욕을 위해 달려야만 했던 나의 일상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슴속에 묻어 둔 채 삶의 실타래를 풀지 말자는 것이다. 도시는 얼기설기 얽힌 가슴 속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자정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도시를 움직이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가 잠깐 잊어버렸던 사소한 것에서의 소중함을 생각해 봄은 어떨까.
바람에 흔들거리는 갈대의 연약함을 지적하기보다는 갈대를 흔드는 바람을 탓해 본 적은 있는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귀중한 가치가 숨어 있다.

올겨울에는 조그만 풀 한 포기에게도 생명의 가치가 숨쉬고, 골목 안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하얗게 탄 연탄재, 그에게도 필요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따스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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