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리운 岳友여…’ 제주 산악인 잠든 만년설산
‘아~그리운 岳友여…’ 제주 산악인 잠든 만년설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10 19: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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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네팔 최초 국립공원 랑탕 히말라야를 가다(3)
이틀 동안 계곡을 따라 숲길을 걸었는데, 3000m 지점에 이르러 숲을 벗어나자 만년설이 쌓인 랑탕 히말라야 산맥이 웅장하게 나타났다. 거대한 성벽 같은 암벽 아래 있는 랑탕 마을에는 전통 티벳 형식의 주택이 많이 보인다.
이틀 동안 계곡을 따라 숲길을 걸었는데, 3000m 지점에 이르러 숲을 벗어나자 만년설이 쌓인 랑탕 히말라야 산맥이 웅장하게 나타났다. 거대한 성벽 같은 암벽 아래 있는 랑탕 마을에는 전통 티벳 형식의 주택이 많이 보인다.

■ 웅장한 모습 드러낸 랑탕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는 이렇게 거대한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은 볼 수 없었는데, 랑탕 계곡은 오를수록 숲은 더 깊고 생명의 소리는 다채로웠습니다.

밤새 계곡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새벽에는 이름 모를 새들 소리가 숲을 깨우고 계곡을 감싸 흐르는 물안개는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언제 일어났는지 트레커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생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랑탕 마을까지 어제처럼 계곡 길을 걷게 돼 크게 힘들지 않지만, 그래도 고소 적응을 위해 천천히 걸으라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꼭 지켜야 한답니다.

포터들이 출발하자 오늘은 꼭 뒤따라 볼 생각으로 동행했지만, 1시간 정도까지는 같이 다녔으나 사진을 찍다 보면 저만치 가버려 따라가기가 힘들어 오늘도 포기했습니다. 도대체 포터들은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것일까?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고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아무리 고산 지역에 태어났다고 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헉헉거리며 오르다 보니 멀리 포터들이 쉬고 있어 잰걸음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이런 나를 보자 뭐라고 하며 내가 지고 있는 배낭을 들러봅니다. 그러더니 눈을 크게 뜨고는 손짓으로 ‘이걸 지고 다니고 있느냐’는 표정입니다. 상당히 무겁다는 듯 혀를 찹니다. 배낭은 작아 보이나 속에는 카메라 3대에 렌즈 3개가 들었으니 꽤 무겁기도 했지만, 항상 지고 다니던 습관 때문인지 무겁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포터들은 놀라는 눈치입니다.

한 포터가 짐을 덜어주면 자기가 지고 가겠다지만, 나는 가면서 다 사용해야 하니까 괜찮다고 했으나 오늘 숙소까지만 가져다준다고 짐을 뺏다시피 합니다. 순간 자기들 짐도 무거운데, 이런 순박한 마음에 울컥해지는 감정을 겨우 참았습니다.

히말라야 설산이 녹아 랑탕 계곡으로 우렁차게 흐르는 소리와 숲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분위기를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앞이 확 트이며 순백의 설산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틀 동안 계곡을 따라 숲길을 걸었는데, 3000m 지점에 이르러 숲을 벗어나는 순간, 왼쪽으로는 거대한 암벽이, 오른쪽으로는 첩첩 산들이 펼쳐져 지금껏 숲길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또 다른 세상에 온 느낌입니다. 

벌판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커다란 바위들만 듬성듬성 서 있어 마치 한라산 1800고지에 있는 산작지왓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곳곳에서 야크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주민이 오가는 것을 보니 마을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높은 지역은 아니라 해도 좀 서둘러 다니며 사진을 찍었더니 숨이 헉헉거리는 게 고산이란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한 주민을 만나 “저기가 랑탕?”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랑탕 마을까지 가는 도중 풀밭에 튼실한 고사리가 즐비하게 자라고 있어 봄철 제주에서 고사리 꺾던 생각이나 허리를 굽혀 고사리를 꺾어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민이 계속 쳐다보는 게 신경이 쓰여 ‘이거 안 먹는 것이냐’고 손짓으로 묻자 그는 그냥 웃기만 합니다. 이렇게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 사람들은 고사를 안 먹는 모양입니다.  

트레킹 도중 포터들을 따라가다 길가에 앉아 바구니를 만들고 있는 노인과 아이를 만났다.
트레킹 도중 포터들을 따라가다 길가에 앉아 바구니를 만들고 있는 노인과 아이를 만났다.

■ 故 김진현 산악인을 기리며…
랑탕 마을로 들어서자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서 있는 암벽 아래 돌담으로 쌓은 집들이 너무도 정겹습니다. 바람이 거센 지역인지 밭담과 집 울타리를 전부 돌로 쌓았고 긴 룽다 깃발이 걸려있는 전통 티벳 주택 형식입니다. 올라갈수록 이런 집이 즐비하게 서 있는 이 마을에서 오늘 숙박을 한답니다.

일행이 다 도착하자 박훈규 대장이 “이곳에 1992년 랑탕 리룽 적설기 정상 등반 성공 후 하산길에 사고로 사망한 설암산악회 김진현 악우(岳友)의 추모비가 있으니 찾아가 보자”며 길을 나섰습니다.

멀지 않은 절벽 아래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김진형 악우의 비석이 쓸쓸히 서 있습니다. 제주에서 정성껏 마련해간 음식을 차려놓고 이역만리 머나먼, 히말라야 만년설에 묻혀있는 김진현 악우를 생각하며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김진현 악우는 저와 함께 산악활동을 했던 적은 없지만, 같은 산악회 소속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려오는데 박훈규 대장이 “산악회 후배에게 술 한 잔 올리라”고 말을 건넵니다.

‘저 만년설 어딘가에 편안히 잠들고 있겠지요. 얼굴은 모르지만,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

아마도 랑탕 리룽 정상 아래 만년설 속에 잠들고 있는 김진현 악우도 멀리 고향에서 온 산악인들을 반갑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1992년 랑탕 리룽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길에 사고를 당한 설암산악회 김진현 산악인의 추모비를 찾은 제주산악회 트레킹 팀이 참배하고 있다.
1992년 랑탕 리룽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길에 사고를 당한 설암산악회 김진현 산악인의 추모비를 찾은 제주산악회 트레킹 팀이 참배하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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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순 2021-06-10 23:54:08
자정으로 건너가는 시간
수많은 빗방울 소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