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상기후가 지구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올해 4월 필리핀에 큰 피해를 줬던 ‘태풍 수리개’는 관측 이래 가장 강한 4월 태풍으로 기록되었다. 일본에서는 5월 중순에 이미 장마가 시작되어 65년 만에 가장 빠른 장마로 신기록을 세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상기후 소식이 우리를 불안케 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장마다. 예부터 ‘오뉴월 장마’라는 말을 많이 썼다. 음력 오뉴월은 양력으로 대략 6, 7월이다. 6월 중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한 달 이상 흐렸다 개었다 반복하는 특이한 철이 든다. 이른바 장마철이다. 우리나라는 춘하추동에 장마철을 더하면 5계절이 있는 셈이다.

장마는 오호츠크해 고기압 등 한대기단과 북태평양 고기압이 팽팽하게 싸우면서 마치 전쟁터와 흡사한 전선이 장기간 형성된다. 이 정체전선을 흔히 장마전선이라 한다. 장마의 마는 물의 옛말인 ‘맣’에서 비롯되었고, 장(長)은 긴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마’라고 했다. 중국에선 ‘메이우(梅雨)’, 일본에선 ‘바이우(梅雨)’라고 한다. 매실을 익게 하는 비라는 뜻이다. 

제주에 ‘오월 마는 꾸어당도 다’라는 속담이 있다. 오월 장마는 꿔서라도 오게 한다는 뜻이다. 봄 가뭄을 해갈시켜 줄 장마가 오기를 고대하는 조상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보리타작을 마친 후 마가 치면 재빨리 밭을 갈아엎어 고구마를 심었고, 조와 산디 같은 여름작물을 파종했다. 

‘한락산에 번구름 내치민 마 걷나’라는 속담도 있다. 한라산에 뭉게구름이 솟아오르면 마가 그친다는 것이다. 기상예보가 없던 시절에 제주인들은 한라산의 구름 모양을 보면서 날씨를 예측했다. 장마 때는 대개 층운형 구름이 짙게 드리우며 하늘을 가린다. 하늘 문이 열리고 적운형 구름인 뭉게구름이 한라산에 걸치면 장마가 그칠 징조임을 조상들은 알았다.

장마는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찾아오기 때문에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다. 잦은 비로 생활이 불편하고,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불쾌지수가 높다. 그렇다고 하늘을 원망하고 날씨 탓만 할 것인가. 장마와 동행하는 삶이 오히려 지혜롭지 않을까. 모든 날씨는 축복이라 여기며 살면, 빗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린다. 바람 소리는 조상의 음성같이 경외심을 갖게 한다. 

제주 조상들의 기후친화력은 존경할만하다. 장맛비로 바깥일이 여의치 않을 때 제주인들은 집에서 쉬면서 햇보리를 볶아 개역을 만들었다.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개역은 최고의 간식거리이자 비상식량이었다. 장마철엔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음식이 잘 쉬었다. 곡식 한 톨이라도 아끼며 조냥 했던 조상들은 상한 밥이라도 버리지 않고 발효시켜 쉰다리를 만들었다. 새콤달콤 시큼한 그 맛에 무더위는 싹 사라졌고,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릴 수 있었다. 

장마 때 내리는 비는 대략 연 강수량의 약 30% 정도이다. 그러나 마른장마가 오거나 장마가 일찍 끝나버리면 여름 가뭄이 들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태풍과 가을장마까지 실종해버리면 그해 여름은 물론이고 다음 해 장마까지 심각한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릴 수 있다. 장마는 물 자원 확보 측면에서 매우 고마운 존재다. 

요즘 장마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장마는 역대 최장 장마였다. 한 달 정도면 끝나던 장마가 중부지방에서는 54일, 제주에선 49일 계속되었다. 이 돌연변이 장마의 배후에는 기후위기가 영향을 주었다. 북극 지역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면서 북극 한기를 가두는 고위도 상층의 제트기류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북극 한기가 중위도로 남하하여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을 저지하면서 정체전선이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그에 따라 장마가 길어졌다. 

올해 장마는 어떨는지 궁금하다. 마파람만이 아는 대답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