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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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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양들의 침묵이 있다.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그 당시 미국의 범죄 스릴러의 걸작으로 꼽힌다.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는 버팔로 빌이라고 하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의 조사를 맡게된다. 좀체로 수사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그녀는 한니발 렉터와의 면담을 요구한다.

한니발은 뛰어난 정신과 의사였지만 자신의 환자를 9명이나 죽이고 그 인육을 먹은 사이코패스였다.

그에게 기대한 것은 그 자신의 광기로 타인의 광기를 드려다 볼 수있는가 하는 것이였다. 살인마의 심리를 살인마에게 묻고 문제를 풀어가고 싶었다.

조바심과 기대를 갖고 그녀는 수감되어 있는 한니발을 조심스럽게 만난다. 놀랍게도 그는 전혀 죄책감이 없는 냉혈이었다. 뿐만아니라 끊임없이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모욕적인 순간들을 견디며 어떻게 해서라도 사건의 단서를 얻고 싶어한다.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심리적 질문이 오고 간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도덕적 존엄성의 결여 때문만은 아니다. 탐욕은 물론이고 외로움도 우리를 취약한 존재로 만든다. 선을 위해 악의 도움을 받아선 안 된다는 법칙도 없다. 성숙해진 정의는 더 이상 과거에 휘둘리지 않는다라는 것이런 내용이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우리들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탈출하는 것.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뒤틀린 채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들은 살면서 온갖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 자기방어를 하고 때로는 마치 사회의 희생양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백한 것은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 사람의 심리적 토론은 의미가 없었다. 부끄러움과 같은 공감 감정은 사회적 감정이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적 감정이 불능이다. 부끄러움은 커녕 의로움이나 정의감이 전혀 없다.

요즘 사이코패스적 범죄가 너무도 만연하다. 사회가 너무 어지럽다.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끔찍한 폭력들. 악플, 험담, 상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심지어 자살로 몰고 가도 그런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들은 심드렁하다.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반사회적 행동.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 죄책감 결여. 잔혹함의 특성을 갖고 있다.

정인이 사건의 그 양모는 밝고 명랑하게 그 누구보다도 수감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다.

오히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양들의 울음소리는 멈추었냐고 비아냥거리면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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