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베트남, 태국 수준으로 떨어질까”
“한국은 베트남, 태국 수준으로 떨어질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6.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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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나는 대학 시절에 시대와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훌륭한 분들의 강연을 찾아다니며 듣곤 했다. 함석헌, 백기완씨 등 여러 강의를 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가곡 ‘가고파’의 가사를 쓴 노산 이은상의 강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노산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동양고전을 종횡무진 하며 청년들에게 나라 사랑을 강조했다. “나라 있어야 국민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 되고 나라가 힘 있고 부강한 나라여야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많은 고초를 겪은 노산은 망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겪으신 분이다. 그러기에 그의 나라 사랑은 더욱 각별했다. 노산은 국토 사랑이 나라 사랑의 첫 출발이라고 하셨다. 한라산도 여러 차례 등반했다.

소련의 세계적인 문호 솔제니친이 노벨문학상을 받자 소련당국으로부터 추방명령이 떨어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소련 체제의 폭력과 폭압을 비판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자기가 밟고 있는 땅에 입맞춤했다. 쇼팽도 조국 폴란드를 떠나며 작은 봉지에 흙을 담아 들고 떠났다.

이런 이야기는 나라 사랑은 자기가 태어난 땅을 사랑하는 일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생각에 19세기 이 나라, 조선을 보자. 수구파와 개화파, 친일·친청, 친러·친미로 갈라져 싸우느라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죽하면 함석헌이  ‘스스로 제 운명을 개척하고 사람 노릇 하자는 생각 없이, 오늘은 이놈에게 내일은 저놈에게 붙어 그때그때 구차한 안락을 탐했다’며 구한말 조선을 ‘늙은 갈보’라고 비판했겠나(뜻으로 본 한국역사).

나라의 흥망성쇠에는 인과율이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지도자의 무능력과 부패가 주원인이었다. 

조선 지도자 고종은 ‘무능’했다. 그리고 그를 무조건 추종하는 지배집단인 양반계층도 썩을 대로 썩었다. 그렇게 썩어서 나라가 힘을 잃었으니 백성을 지켜줄 수 없었다.

나라의 힘이란 뭔가? 다의적 해석이 따르지만, 근본은 경제력이다. 

지난해 코로나가 창궐하여 전 세계적으로 나라 간 교류가 갑자기 끊기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전세기로 외국에 고립되어 있는 우리 국민들을 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며 ‘힘 있는 나라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낀 건 그 때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1960년대 초 80달러에 불과하던 국민소득이 이제 3만달러를 넘어섰다.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한 경우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것은 기적이다. 세계는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경탄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세계가 경탄하는 이 기적은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의 과제는 지금 미·중 간에 벌어지고 패권경쟁 사이에서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견인해낼 수 있는 독자적인 국가모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기업들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 또 내부적으로 양극화와 저출산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도전 과제들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 과제 앞에, 국민 통합에 실패한 이 나라 ‘내로남불’ 정치와 시대와 인간 본성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관료집단을 보면서 과연 한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의구심이 든다.

어느 정치학자의 우울한 전망처럼  “한국의 경제력이 머지않은 장래에 베트남이나 태국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한낱 허언에 불과한 것일까? 

제발 이러한 전망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렇게 될 것도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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