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천편을 썼다
시 천편을 썼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5.2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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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조엽문학회 회장

무려 50년 동안 꿈으로 간직했던 일을 구체화에 돌입했다.

그것은 내 이름을 걸고 문학전집을 발간하는 일로, 1000편을 책 두 권으로 묶어 상재하였다. 앞으로 산문, 제주어 등, 계속해서 상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잘한 일이라 자찬해야 하지만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음에 절로 침착해진다. 친한 친구로부터 들은 말로, 시집을 내는 것은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저 그런 줄 알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별이 빛나는 순간이 있으므로 저마다 다반사라는 의미이다.

여기다가 내 말투나 태도, 시 속에서 오만한 구석이 없는지부터 살피는 지인도 있다. 첫 대면부터 거만을 떨지 않기를 바라는 부류도 있음을 알았다.

깔끔하게 100편정도 발표해도 문학세계가 절로 보일 것인데 건방을 떨려고 1000편이나 발표를 했으니 읽기도 버거울 거다. 그래서 평소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지인에게만 너그러움을 호소하여 소장하게 할 수 밖에.

그래도 염려하는 바는 있다. 도대체 인문학을 얼마나 깊이 알기에 그렇게 많은 시를 썼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넋두리가 많이 섞여있어서 허접투성이가 아니겠냐는 거다. 이 또한 맞는 지적이다. 가령, 작년 봄이 금년 봄과 비슷할 수는 있어도 같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마다 해마다 봄을 노래하고 있음이다.

그러니까 타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얼마나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통틀어서 잘못 쓴 쪽으로 가닥을 잡고 서툰 문장에 느긋하게 안도하면서 웃어주고 싶은 비단마음결도 있어 다수의 침묵에 동참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다수의 침묵은 그 나마 나은 편이다. 이것도 시라고 썼느냐는 항의는 도무지 묵과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냥 침묵하기보다는 칭찬을 해야 마땅하다는 그런 맥락인 거다.

그렇다면 왜 오만하면 공연히 미워지는 걸까? 오만을 부추겨주면 기고만장으로 확산될 조짐이 염려스러워서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최선을 다한 결과로 더 이상은 없다는 자만심이야 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인지 몰라서 하는 자기애의 극치라는 거다.

예를 들면, 무술을 달련하여 일견 고수가 되었다는 착각에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고수를 찾아다니며 합을 겨루고 무릎을 꿇게 하는 통쾌함을 즐기다가 드디어 고수를 만나서 다시는 검을 들지 못하는 결과가 온다고 매사 겸손하시라는 배려인 거다.

훈장을 받은 역사의 인물도,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도 수백억을 사회 빈민계층에 기부한 위인도 세월의 파도에 한 때의 빛나는 별이 되어 침잠한다.

어제 내 고향 탑하동 바다를 찾았다. 유년의 수평선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았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한 중용이 수평선의 의미이다. 제주도가 낳은 보통 시인이 쓴 시집이라고 격을 다듬었다. 어찌하든, 관심이 고마울 따름인데 중한 것은 나는 시를 1000편을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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