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희망’이라 믿는 나라…미의 도시와 옛 왕국의 古都를 만나다
‘삶은 희망’이라 믿는 나라…미의 도시와 옛 왕국의 古都를 만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5.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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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네팔 계곡의 3대 왕국을 찾아서(2)
옛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파탄 더르바르 광장. 크리슈나 사원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크고 작원 사원이 모여 있다.
옛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파탄 더르바르 광장. 크리슈나 사원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크고 작원 사원이 모여 있다.

■ 파탄 더르바르 광장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인생은 희망, 희망은 인생”이라는 네팔 속담이 있답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팔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시공을 신의 뜻으로 여겨서 삶 자체는 희망이라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답니다. 자신을 믿고, 다른 사람을 믿고 살아가면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신앙 세계입니다.

카트만두에서 5㎞ 남쪽에 있는 고대 도시 파탄(Patan)을 찾았습니다. 15세기 이후 카트만두, 박타푸르와 함께 세 왕국 중 하나로 ‘미의 도시’란 뜻의 랄릿푸르(Lalitpur)라고 불릴 만큼 고대 파탄의 장인들은 카트만두 계곡에서 제일가는 솜씨를 자랑했다고 하는데 솜씨 좋은 네와르족 예술의 발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부처를 낳은 석가족(샤카족) 사람들이 기원전 5세기쯤 네팔 파탄지역으로 이동해 살기 시작했답니다. 카필라성에 살던 석가족은 성이 멸망한 후 인도의 상카시아(산카샤)와 파탄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때 석가족 일부가 히말라야 산을 향해 피난을 갔으나 지금은 파탄에 모여 석가족 집성촌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얼마나 갔을까. 좁은 골목길을 오르자 붉은 벽돌로 지은 사원 같은 여러 개의 건물이 눈길을 끕니다. “도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니 천천히 걸어도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대충 듣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 도시의 핵심 포인트는 옛 왕궁터로 왕족들이 살았던 더르바르 광장이란 말에 서둘러 광장을 찾아 사람들이 몰리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광장 주변은 좁은 골목이 사방으로 이어졌고 도시 곳곳에는 아소카왕이 세웠다는 44개의 사리탑이 서 있어 오래된 불교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골목을 서성거리다 보니 크고 작은 전통 수공예 공방, 대장간, 놋쇠 파는 가게 등이 줄지어 있어 마치 ‘살아 있는 미술관’을 보는 듯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또 공방도 운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함부로 출입할 수도 없는데 인도나 네팔, 중국에서는 귀중한 문화유산에서 생활한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 구석 저 구석 뒤적이며 촬영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황급히 찾아오더니 “다른 곳으로 빨리 가자”고 합니다. “천천히 둘러볼 시간이 있다고 했으면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다른 일행들이 별로 볼 게 없으니 다른 장소로 가자고 재촉한다. 선생 혼자니 이해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문화유산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는데 일행 모두 차에 올라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타푸르의 왕궁터를 둘러보며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주민들이 추수하는지 탈곡한 곡식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박타푸르의 왕궁터를 둘러보며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주민들이 추수하는지 탈곡한 곡식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 말라 왕조의 영화를 누렸던 박타푸르
우리 일행을 태운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해 카트만두 세 왕국 중 말라 왕조의 영화를 누렸던 고도(古都) 박타푸르로 향했습니다. 작은 시골길 같은 곳을 15㎞ 달려 산등성이를 올라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우글거린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많습니다.

옛 왕궁까지 가는 사이에 기념품 가게가 즐비해 눈으로 즐기면서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옴마니밧메훔’ 진언이 크게 들립니다. 알고 보니 한 작은 가게에서 틀어놓은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소리였습니다. 이전 트레킹 도중 새벽 촬영 때 사원에서 들어서 꼭 사고 싶었던 바로 그 ‘옴마니밧메훔 CD’입니다. 

멀리서 본 왕궁 규모는 카트만두나 파탄보다 웅장합니다. 박타푸르는 9세기 무렵 형성하기 시작해 12~18세기에 인도와 티벳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성할 때 만들어진 유적이라 사원과 골목, 주택 등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랍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주민들이 추수하는지 탈곡한 곡식들을 정리하고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노인들이 모여앉아 4개의 작은 나무 막대로 마치 우리의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도 서너 명의 노인이 둘러앉아 우리의 전통놀이인 고누(꼰)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트레킹 때 본 정낭과 맷돌도 그렇고, 지금 본 두 개의 놀이도 우리 옛 놀이와 너무 흡사해 무척 놀랐습니다.

이곳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다른 곳보다 발전이 늦어 그만큼 태곳적 경관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보석’이란 말을 실감케 합니다.

사원들의 벽과 기둥에 있는 정교한 나무 조각과 석상들도 눈여겨 볼 만하지만, 비슈누·시바 등 힌두교 신들의 다채로운 조각들은 인도지역 힌두사원을 연상케 합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네팔, 몇 년 전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들 문화유산이 크게 파괴됐습니다. 지금도 그때 상흔이 남아있는데 다소 느리지만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골목 한쪽에서 노인들이 모여앉아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어 놀랐다.
골목 한쪽에서 노인들이 모여앉아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어 놀랐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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