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맛이 간 사람들’
‘약간 맛이 간 사람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1.05.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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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데, 젊어서도 입은 함부로 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하고, 또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말을 경계하기도한다. 

이런 말에 대한 경계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입은 모든 화(禍)의 근원’이라고 했다.

영국 속담에서도 ‘말이 일단 밖으로 나가면 타인의 소유’라고 한다.

우리말은 논리보다는 감성적인 탓인지,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고, 조사(助詞) 하나로도 느낌이 확 바뀐다.

‘말을 잘한다’와 ‘말은 잘한다’, ‘말도 잘한다’, ‘말만 잘한다’는 같은 뜻이 아니다.

요즘 정치판의 말도 그렇다.

정치인인지 언론인인지 구분이 모호한 어떤 사람이 말했다는 ‘약간 맛이 간’ 말이 뉴스를 타고 있다.

대선이 10개월 앞에 다가오고, 이런 조악한 언어들이 과연 어디까지 갈건지 궁금하다.

▲막말은 정권의 막바지에 극심해진다.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을 ‘귀태(鬼胎,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등신’ ‘노가리’ ‘쥐박이’ ‘그년’ 등 험한 말로 비하하기 일쑤였다. 

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험한 말도 벌써 여러 개다. 하지만 국민들은 자꾸 듣다보니 집단 면역이 생겼는지 시큰둥하다.

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고 여기는 탓이다. 

하이데거가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막말은 정치인들에겐 존재감을 부각하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수단인 셈이다.

상대편이 하면 막말이어도 자기편이 하면 ‘사이다 발언’으로 여기는 대중의 이중잣대가 막말의 토양이다.

하지만 갈증 날 때 사이다가 시원한 게 그 때뿐이듯, 막말은 부메랑처럼 자신을 때린다. 막말로 결국 신세 망친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어쩌다 이런 막말 판이 됐을까.

품격(品格)을 의미하는 ‘품(品)’자에는 입 ‘구(口)’자가 세 개나 들어있다.

주고받는 말이 쌓여 인격을 이룬다. 개개인의 말에도 격이 있는데 하물며 나라의 선량인 정치인들의 말임에랴.

정치권의 ‘막말’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처신과 대응이 어땠기에 언론이나 지식인들까지 조롱을 당하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막말이 공감(共感)능력 부족에 기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성이 문제다. 우리사회가 노골적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있어서다. 

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상대 혐오로 세(勢)를 불리는 막말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런 후진적인 정치문화는 그나마 바닥인 우리사회 공감능력을 고갈시키고 또 다른 적대감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다.

▲불교 경전인 천수경은 독경을 하기 앞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업, 죄를 깨끗이 씻는 참된 말)’으로 시작한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깨끗하다, 깨끗하다는 의미의 이 산스크리트어 진언을 세 번 반복하며 입을 씻는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게 어디 불경뿐인가. 성경 잠언에도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언어는 무섭고, 한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이 화를 부른다는 얘기다. 부적절한 말로 주목을 끌려다가는 결국 역사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가 ‘혐오사회’에서 밝힌 ‘중증(重症) 혐오증’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요즘 서로 ‘약간 맛이 갔다’고 조롱을 하는 걸 보니 우리는 모두 ‘맛이 간 사람들’인 셈이다.

정치인의 막말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듯 부끄럽게도 언론, 지식인들의 막말이 ‘혐오사회’를 부르고 있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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