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
스승의 은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5.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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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석 전 제주대학교 총장

나는 사제지정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사랑을 주신 은사님들이 몇 분 계신다. 우도 촌놈이 제주시로 나와 오현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선생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방황하는 나에게 고봉식 교육감님은 당신 집에 와서 살라고 하셨다. 6개월을 선생님 댁에 살며 보살핌을 받았다.

대학 은사님들은 제주에 사는 내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올 때는 비행기 값에 보태라며 여비를 챙겨주셨다. 그런 은사님들의 사랑으로 나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적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노정현 선생님의 사랑은 더욱 각별했다. 선생님은 오랜 투병 끝에 2010년 12월 소천하셨다. 빈소에 가서 참배하는데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매우 엄격한 분이었지만 나에게는 기대도 많이 하시고 늘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제주대 총장에 당선됐을 때 선생님은 이미 건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매우 편찮으셨다. 그 와중에도 축하 전화를 하셔서 기쁨을 감추지 못 하셨다. 마치 학생을 가르치듯이 훌륭한 총장이 되려면 직원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선생님은 고려대 출신으로 연세대에 재직하고 있었지만 연세대 총장을 하고도 남을 분이었다. 총장만 빼고 여러 보직을 거치셨기에 대학행정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고향에 내려가는 나에게 꼬박꼬박 여비에 보태라고 용돈을 챙겨주시고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 할 때는 집으로 초대해서 명절 음식을 대접해주셨다.

제주대에 부임한 후 상경해서 가끔 찾아뵐 때는 나를 고급 호텔로 데려가서 저녁을 사주면서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선생님은 늘 나에게 사회적 성장을 위한 나침반을 제시해주셨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었다. 더구나 공부를 할 만한 마땅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다.

학부 때는 물론 대학원에 다닐 때도, 제주대학 교수가 되었을 때도 나는 선생님에게 늘 어린 학생이었나 보다. 선생님은 나를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보살펴주셨다.

나도 젊고 모든 것이 희망으로 보였을 때는 은사님들의 은혜를 잘 몰랐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은사님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겨우 전화 통화를 했는데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다가와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 하셨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너무 슬픈 마음이 들었다. 깊은 병환 중이라 전화 통화도 여의치 않고 해서 선생님께 이런 소회를 카드에 써서 작은 선물과 함께 보내드렸다.

선생님께서 내 글을 읽으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사모님께서 전해 주셨다. 그 말씀에 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돌아가시고 몇 달 후에 꿈속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생전의 단정하고 환한 얼굴이었다. 아마 이승에 대한 영원한 고별인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소 무뚝뚝하신 사모님도 선생님 없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버거웠던지 얼마 안 되어 선생님을 따라 가버리셨다.

나이가 들수록 선생님들이 그립다. 이렇게 한라산 자락이 환하게 드러난 5월 어느 날 선생님께 자리물회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살아 있다고 선생님이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 무심함을 꾸짖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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