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해
있을 때 잘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5.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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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머니는 가족여행을 가서 해외 유명 관광지의 긴 계단을 오르내리셨다. 그런 어머니의 다리가 탈이 났다. 83년을 쉬지 않고 사용했으니 고장 날만도 하다. 한쪽 관절 수명이 다 되었단다. 의술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서울 큰 병원을 찾을까 하다가 이모저모 따져보고 제주에서 하기로 했다.

손자들까지 있는 가족 단톡방에 수술 날짜를 알리고 수술이 잘 되도록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하자고 했다. 코로나로 못 본 지가 꽤 된 외국에 있는 가족들도 기도하겠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입원 기간 어머니의 병간호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식들이 하기로 했다. 내가 퇴직했으니 효도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직장생활 하느라 친정에도 자주 못 갔고 가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세 뒤돌아 나왔던 바쁜 딸이었다.

수술 전날 다리소독까지 마치고 나니 어머니는 병원 침대에서 쉬 잠들지 못했다. 나도 묵주를 돌리다 잠이 들었다. 좀처럼 꿈을 잘 안 꾸는데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 장면이다. 결승선을 향해 내가 1등으로 달려가는데,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달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꿈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다니. 아마도 어머니가 그렇게 달리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어머니는 운동회 때마다 마음으로 나와 함께 달렸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운동회 날 달리기에서 1등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수술실로 실려 간 어머니는 오후가 되어서야 병실로 오셨다. 수술통증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어머니는 의연하게 이겨내셨다. 같은 병실 환자들이 참을성이 대단하시다고 칭찬할 정도다. 무릎에 인공 관절을 집어넣었으니 왜 아프지 않겠는가? 자식 앞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속내를 안다. 젊었을 때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거뜬히 해내셨던 분이다.

누구라도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양쪽 무릎을 다 수술하신 분, 넓적다리관절 수술을 하신 분, 수술 후 넘어져서 다시 입원하신 분들이 같은 병실을 쓰니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내 무릎도 언제까지 안녕할지 은근 걱정이 된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링거를 꽂은 채 잠이 든 어머니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가까이에서 찬찬히 바라보니 젊은 시절 어머니의 모습이 스친다. 그 위로 주름 무늬가 그려지고 팽팽했던 볼살도 늘어졌다. 곱던 피부에도 세월만큼의 흔적들이 생겼다. 자식 일곱을 키우느라 생긴 훈장들이나 다름없다.

어머니를 간호하며 어머니의 체온과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낀다. 그동안 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체온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병원을 드나들며 어머니를 간호한 시간은 효도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은총의 시간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뵐 때 마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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