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소고(小考)
5월 소고(小考)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5.02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습관이 하나 있다. 매달 중순쯤 되면 미리 달력을 한 장 걷어놓고 다음 달의 주요 기념일들을 살펴본다. 특히 5월 달력은 유심히 보게 된다. 유난히 기념일도 많고 학생과 직장인 모두를 설레게 하는 ‘빨간날’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주인공인 날도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이다. 괜히 ‘가정의 달’이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5월이 되면 걱정이 앞선다.

이제는 일상화된 코로나19 때문인지, 감염병 위기와 맞물린 생계난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 때문인지, 이유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전에 비해 의미는 희미해지고 부담은 커졌다.

5월의 시작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올해에도 변함없이 제주지역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어린이날은 부모에게, 어버이날은 자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서로가 “올해는 그냥 지나가도 괜찮다”고 할지라도 이날 하루만큼은 내 자식이, 내 부모가 가장 기쁜 날이길 바라는 마음은 시쳇말로 ‘1도’ 줄어들지 않는다.

코로나19가 학교 현장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면서 스승의날은 쓸쓸해져간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스승의 은혜를 목 놓아 부르는 모습은 이제 먼 과거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성년의날과 부부의날은 어른들의 날이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5월의 마지막 날은 일본 정부 덕분에 의미가 커졌다.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철회해달라는 목소리가 연일 거세지고 있다. 생존과 먹거리 안전,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역사회의 반발은 5월의 마지막 날인 바다의날에도 계속될 것이다.

5월의 주요 일정을 수첩에 옮겨 적어보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