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빛으로 물든 들녘 지나 ‘석가 탄생지’ 향하다
황금 빛으로 물든 들녘 지나 ‘석가 탄생지’ 향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4.29 2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부.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를 찾아서(1)
부처의 고향 룸비니를 향하는 도중 탄센이라는 도시에 들렀다. 인근에 펼쳐진 넓은 계단식 밭들이 인상적인데 수확 시기인지 누렇게 익은 작물 색깔이 그야말로 황금빛이다.
부처의 고향 룸비니를 향하는 도중 탄센이라는 도시에 들렀다. 인근에 펼쳐진 넓은 계단식 밭들이 인상적인데 수확 시기인지 누렇게 익은 작물 색깔이 그야말로 황금빛이다.

■ 룸비니는 어디에 있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아련한 영상 속 기운이 아직 머릿속에 감돕니다. 언제나 일정을 마치면 그 후유증이 여운(餘韻)처럼 가슴에 오래도록 머무릅니다.

동트기 전 아직 어둠에 잠긴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옴마니밧메훔’이 온 산에 울려 퍼질 때 나도 모르게 합장했던 순간, 박영석 대장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 이제 그 모든 것을 안나푸르나에 묻고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Lumbini)를 찾아 먼 길을 나섭니다.

이번 트레킹에 나서기 전까지도 룸비니는 인도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여행 자료집을 보고 나서야 네팔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지간히 우둔하다고 생각합니다. 

룸비니는 부처 탄생지로 인도 국경에서 약 20㎞ 북쪽에 위치한답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부다가야), 첫 설법지 ‘사르나트’, 열반지 ‘쿠시나가르’와 더불어 불교 4대 성지로 일컬어집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탄센이라는 도시로 향합니다. 룸비니로 가는 길목에 있는 탄센은 센족(Sen)의해 만들어진 왕국으로, 팔파(Palpa)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16세기에 세력을 확장해 네팔 남부 평원과 카트만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1806년 네팔 최초로 통일한 사하 왕에 의해 가장 늦게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버스가 산등성이를 오르기를 몇 차례, 눈 아래로 넓은 계단식 밭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요즘 수확할 시기인지 누렇게 익은 작물 색깔이 그야말로 황금빛입니다. 마침 차가 언덕을 오를 때 문제가 있어 잠시 세우자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서두르다 보니 흔들리지 않았을까 화면을 재생해 보는데 어느새 탄센에 도착했습니다.

탄센은 언덕 경사면에 있는 도시로, 광장을 중심으로 오래된 건물과 상점이 촘촘히 모여 있습니다. 크게 볼 것은 없지만, 몇 개의 사원과 스리나가르 언덕에 오르면 멀리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등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가볼까 하다가 그냥 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서 현지 주민들 모습만 촬영했습니다.

한국 스님이 설립했다는 대성 석가사에서 바라본 룸비니 동산 풍경. 세계 각국의 사원들이 모여 있다.
한국 스님이 설립했다는 대성 석가사에서 바라본 룸비니 동산 풍경. 세계 각국의 사원들이 모여 있다.

■ 네팔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었는가
부처의 고향 룸비니로 가는 지역은 지금껏 네팔에서 봤던 지형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습니다. 산악 국가라 모든 지형이 산을 중심으로 이뤄져 경사가 심했는데, 장대한 히말라야 북인도의 평원지대여서 그런지 네팔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었는가 하고 모두 감탄했습니다.

한 작은 도시의 시장을 지나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 한참을 차가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라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먹음직한 과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모처럼 ‘과일 파티’를 하자고 이것저것 자루에 넣고 다시 룸비니로 향했습니다. 북적이는 도심을 빠져나오자 차창 너머로 스치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 무척 아름다워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야자수와 각종 아열대 나무로 이뤄진 숲 속 곳곳에 여러 나라에서 지은 사원이 있는 룸비니, 우리 숙소는 한국 사찰인 대성 석가사랍니다. 대성 석가사는 한국 스님이 설립한 사찰로, 규모는 서귀포 중문 대포에 있는 약천사와 비슷하다는 게 주지 스님의 설명입니다.

룸비니는 기원전 249년 인도 최초의 통일제국 마우리아(Maurya) 왕조의 아소카 왕이 순례를 다녀갔으며, 기원후 5세기에는 중국 출신 순례승 법현(法顯), 7세기에는 현장(玄奘) 스님이 다녀가면서 기록을 남겨놓을 정도로 불교도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성지였습니다.

중세 시기 인도에 침입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대규모 유적 파괴를 당하면서 잊혔던 룸비니는 1896년 독일인 휴러의 유적 발굴단이 아소카 석주를 찾아내면서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고 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한 사원 안에서 스님들이 전통 불교 악기인 긴 나팔을 불고 있다.
한 사원 안에서 스님들이 전통 불교 악기인 긴 나팔을 불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