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에 소망을 담으며
풍등에 소망을 담으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4.2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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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자 수필가

동백꽃은 어느새 툭툭 떨어져 붉은 융단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솟구치는 슬픔을 막을 길이 없다.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별나라로 떠난 수많은 죽음들이 떠올라서다.

가로수에 매달린 커다란 풍등을 보았다. 동백꽃 모양이다. 4·3을 기념하기 위해 매달아 놓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뭉실뭉실 떠다니고 풍등은 실제로 날아가는 것처럼 나무에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거린다.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고난의 긴 세월 어찌 견디었는가. 희생자의 원혼을 위로하고 평화의 뜻을 담았다.

4·3수형인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한들 살아온 세월의 한을 다 씻어 낼 수 있을까. 서글프고 억울한 인생들이다.

‘4·3’이 뭐냐고 물으면 오로지 “모르쿠다” “속숨헙써” 만으로 답을 대신했던 세월이었다. 억울하게 수형인이 된 사람들, 짓누르고 있던 죄인의 굴레를 벗고 명예회복의 날을 맞았으니 그 기쁨 오죽이나 클까.

마을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동네 풍경은 조용한 가운데 슬픈 역사를 위로하듯 봄의 전령사들이 꽃에서 꽃으로 날갯짓한다.

4·3평화공원 안으로 꽃을 들고 가는 유족에게서는 고통의 무게가 느껴진다. 등은 구부러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비틀거리며 다가간 노인은 가져온 것을 내려놓고 눈물에 말문이 막혔는지 비석만 하염없이 쓰다듬는다.

‘코로나19’로 집합이 어려운 지경이다. 3년 전 성대했던 70주년 기념식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역사를 기억하는 쪽으로 모두가 관심을 둔다면 유족들에게 혹은 비극을 겪은 세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들이 다니는 관광객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들은 이런 봄의 슬픔을 알기나 할까. 순간 깨닫는다.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아야지. 지나간 시대를 비아냥거리듯 거드럭거드럭하는 사람도 많다. 시대를 잘 타고 난 덕분이리라. 어둡고 슬픈 시대를 모른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 기억하게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마을 사람들이 무작정 쫓겨 숨어들었던 한라산자락에서 해안가 학살 터에 이르기까지 화사하게 봄을 토해내고 있다. 꽃봉오리 일시에 터지더니 꽃잎은 바람에 눈발처럼 흩날린다.

봄은 왜 이리도 빨리 지나는가? 슬프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4월에, 희망을 한 뭉텅이 쓸어안고 싶다. 풍등에 소망을 담으며 역사의 슬픈 흔적을 더듬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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