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묘소들을 만나면…
이름 모를 묘소들을 만나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1.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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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고 삭막한 세상이어서인가. 4월 청명과 한식이 지났지만, 올해는 유난히 부모나 조부모 묘를 찾아가는 성묘객들이 눈에 띄게 많아 보인다.

마음 붙일 곳 없어진 사람들이 어디에도 말 못하는 답답함을 털어놓고, 저 세상에서나마 지켜주기를 빌어보고 싶은 때문이리라.

필자도 한 해에 세 번. 가족들과 함께 조부모와 부모 산소가 있는 서귀포시 동홍동 선산을 찾는다. 청명·한식 때와 단오, 그리고 추석을 앞둔 벌초 때다.

이런 세 번 성묘 나들이를 올해부터는 두 번으로 줄이기로 했다. 나도 그렇고, 동생네와 자식도 다 제 생활이 바쁜 탓이다.

정작 그렇게 결정하고 보니, 마음이 안쓰러운 일도 생겼다. 벗들과 고사리 꺾으러 가는 길에 이름 모를 묘소들을 만나면, 고개를 돌려 먼 하늘만 바라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선산에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옛 추억도 피어오른다.

아, 저기 북쪽 아름드리 크게 자란 소나무들을 심었던 것이 어느 해였던가. 그때 어머니는 저 소나무 숲은 절대로 훼손하지 말라고 했지…. 또 문섬, 섭섬, 범섬이 보이는 남쪽에 심어놓은 편백나무들은 몇 년 됐나.

풀을 베거나 나뭇가지를 치기보다는 이렇게 멍 때리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가는 줄 모른다.

이런 나를 보며 아내가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절대로 이곳에 묻히지 않을 거니 알아서 하세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살아서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밑에서 그만큼 함께 살았으면 됐지…. 죽어서는 나 혼자 세상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꼭 붙이는 말. 이 선산도 앞으로 누가 성묘를 하고 누가 벌초를 할거냐며 평장을 하자고 한다.

▲하기사 산에 가보면 잡풀 우거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무덤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국의 묘지 중 30% 이상이 무연고 묘지라고 할 정도니까.

돌 볼 사람들이 없어지면 폐 무덤이 되기 십상이라는 말은 일리 있다. 그래서 ‘꼴총’이 되지 않게 평장으로 만들자는 얘기일 것이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공동체문화가 강해 매장문화를 선호하고 화장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제주의 화장률은 2009년 46.6%에서 10년만인 2019년에는 75.4%로 상승했다. 그리고 지난해 2020년에는 80%에 육박했다는 추계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묘지 조성과 관리 등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난 때문이라고 한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선 죽으면 땅에 묻었다.

그래선지 지난 주말 17일, 이탈리아 로마에 이런 옥외광고판이 등장했다.

“어머니, 아직도 묻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AFP통신이 전한 사연을 보면 85세 노모가 지난달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사망했는데, 묘지 부족으로 아직 매장하지 못한 아들이 이런 문구를 내걸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유교문화 영향으로 매장 문화가 발달했지만, 원래 풍장(風葬)과 화장 등 다양했다.

장사 지낸다는 뜻의 ‘葬(장)’은 시신(死)을 땅 위(土)에 놓고 풀(艸)을 덮어놓은 형상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섬지방에는 이런 풍장이 많았다. 바다를 떠도니 묘지가 무의미했다. 초원을 떠돌았던 유목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부모를 묻은 곳은 꼭 다시 찾았다. 해양족은 돌을 세워 그 자리 표식을 했고, 몽골족은 이동 중에 부모나 가족이 죽으면 낙타 새끼와 함께 묻었다. 모성애가 강한 낙타가 세월이 지나도 새끼가 묻힌 곳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묘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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