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면 ‘하얀 고봉’, 발 아래는 ‘초록 원시림’
고개 들면 ‘하얀 고봉’, 발 아래는 ‘초록 원시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4.0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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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수확의 여신 안나푸르나 길을 걷다(4)
지나는 마을마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번 트레킹의 묘미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보는 것만으로도 트레킹으로 쌓인 심신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지나는 마을마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번 트레킹의 묘미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보는 것만으로도 트레킹으로 쌓인 심신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 다양한 풍경 만날 수 있는 트레킹
어제 밭에서 까불던 아이들 모습이 자꾸 떠올라 어떻게 잠을 잤는지 깨어보니 어스름한 새벽입니다.

눈뜨기 바쁘게 주섬주섬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걷다 보니 넓은 공간이 있어 카메라를 펼치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온 산을 깨울 듯 ‘옴마니 반메홈’ 진언이 마치 경처럼 울리는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작은 사원 건물에서 요즘 네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옴마니 반메홈’ CD를 틀어 놨는지 온 산에 진언이 깊게 울려 퍼집니다. 그 덕분에 이 새벽이 더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해가 떠오르자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서서히 여명 빛을 받으며 찬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순간, ‘옴마니 반메홈’ 음악이 한없이 어울려 마음을 숙연케 해 셔터를 누를 생각은 하지 않고 두 손 모아 합장을 합니다. ‘아~산의 신들이여.’

하루 더 머물고 싶은 간두룩 마을,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일행은 여러 사람이지만, 걷다 보면 언제나 혼자 걷게 됩니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게 보일 것 같지만, 오히려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듯합니다. 어쩜 군중 속 고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다 만난 주민과 인사를 나누며 걷고 또 걷다 보면 이름 모를 꽃들도 만나고, 숲 사이로 잠깐 보이는 산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트레킹의 즐거움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고개를 숙입니다’란 뜻인 ‘나마스테’를 입속으로 외우며, 가는 사람 오는 사람마다 ‘나마스테~나마스테~’ 하고 인사합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는 여러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은 급경사지에 마치 그림 같은 계단식 밭마다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풍요롭게 보이기도 하고, 산비탈 올라가서 원시림 지대를 보면 이렇게 높은 지역에 거대한 수목이 우거져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참 숲 지역을 걸으며 한 사람도 못 만나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커다란 바구니에 짐을 잔뜩 메고 오는 한 아낙이 보여 ‘나마스테’ 하고 인사하자 방긋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손짓 발짓으로 오늘 목적지 마을에 대해 물었는데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줘서 순간 기가 팍 죽었습니다. 네팔 사람들은 등반 가이드나 해외 용병(남성의 경우)을 직업으로 선호해서 영어는 기본적으로 배우고 외국어를 곧잘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젊은 아낙이 이토록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은 몰랐습니다.  

숲길을 걷는 내내 아까 그 아주머니의 순진한 표정과 커다란 눈망울이 어른거립니다. 숲길을 상상 외로 꽤 오래 걸었으나 뒤에 오는 일행들은 아직 깜깜이고, 지금쯤이면 숙소에 도착할만한데 길가에는 표식 하나 찾아볼 수 없어 잠시 긴장이 됐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행동할 걸 괜히 앞서 와 사서 걱정하고 있다고 머뭇거리는데 멀리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그제야 안심이 됐습니다.

트레킹 도중 만난 숲길.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지만, 수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눈길을 끈다.
트레킹 도중 만난 숲길.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지만, 수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눈길을 끈다.

■ 트레커 북적이는 마을
작은 언덕을 오르자 앞이 확 트이며 숲 사이로 마차푸차레가 보이고 바로 건너 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오늘 숙소인 따다빠니 마을인 듯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여러 채의 로지(Lodge, 여행자 숙소 겸 식당)와 기념품 판매소가 보이고, 외국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혹시 일행 중 먼저 온 사람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현지 주민에게 “여기가 따다빠니가 맞느냐”고 물었지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봐 ‘여기가 아닌가?’ 하고 살짝 걱정이 드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더니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합니다. “따다빠니?”했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더 가야 하는구나!’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가 마침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에게 다시 물었더니 그는 글쎄 제가 지나온 마을이 따다빠니랍니다. 일정표에 나온 작은 약도를 그에게 보이자 방금 지나온 마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인가?’ 하고 다시 돌아갔는데 마침 일행 중 한 분이 보여 한시름 놓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손짓으로 더 가라고 알려줬던 사람은 제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줄 알고 그쪽으로 가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해발 2630m에 있는 따다빠니는 마차푸차레를 마주한 숙박지로 숲 속 곳곳에 로지가 있어 트레커들로 북적입니다. 이곳에서 보는 마차푸차레의 일출이 장관이라 많은 트레커가 모이는 장소랍니다. 내일 날씨가 맑으면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을 테니 기대하랍니다. 슬리핑백 속에서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제발 내일 날씨가 좋기를 빌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제주의 ‘구덕’과 같은 바구니 안에 아이가 들어가 서 있다.
제주의 ‘구덕’과 같은 바구니 안에 아이가 들어가 서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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