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피는 제주와 공감의 실천
동백꽃 피는 제주와 공감의 실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4.0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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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한 해를 훌쩍 넘기면서 이전의 일상으로는 돌아가기 어렵지 않나 하는 마음도 든다. 이런 마음이 ‘코로나 우울로 순화되었다는 코로나 블루인가?’ 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에는 동백꽃 피는 봄이 한창이다.

해마다 빨간 동백꽃이 절정을 이루면 제주는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 못 한 핏빛 기억 탓에 슬프다. 그리 오래 살기는 힘들다는 뜻에서 고희(古稀)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 칠십을 넘기고 다시 삼 년이 지났는데도 제 이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돌이켜보면 2019년 제주의 봄은 ‘4370+1 봄이 왐수다’라는 바람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바람은 ㈔제주4․3범국민위원회의 기획에서부터 출발했고 71주년 추념식에서는 국방부와 경찰청의 공식적인 애도 표명도 있었다. 국회 계류 중이던 4․3특별법 개정안도 지난 3월 16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 제주도당이 ‘4․3의 진정한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화해와 상생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했던 것을 상기한다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개정안 통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힘 제주도당은 환영의 뜻을 표하고 “희생자 보상과 관련해서 정부가 약속한 대로 4‧3희생자에 대한 타당한 보상 기준을 연구 용역으로 마련, 이를 실행하는 보상 관련 법률제정 혹은 4‧3특별법 개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진상조사소위원회 설치 요구와 관련한 대목에서는 의아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특별법이 만들어졌으며 개정되는 그 긴 세월을 지나고서도 다시 “진상조사소위원회의 직접 조사업무 독립 수행”을 요구한 데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은  의구심이 들어 그렇다. 물론 3년 만에 재개된 4‧3희생자 유해 발굴을 통해 4‧3희생자 추정 유해 3구가 발견되는 등 아직도 진실과 그에 기초한 정명이 계속되고 앞으로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2019년 12월 기준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통계치의 총희생자 1만4442명은 2만5000~3만명이라는 추정치에 턱없이 못 미친다.

신종 감염증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현실을 봐도 특별법 제정 이후 21년 만의 쾌거라는 평가에 선뜻 환호하기보다는 아쉬움이 더 진한 이유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환영에 덧붙인 뜬금없는 요구”보다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프레임을 고집했던 책임을 통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논어 ‘위령공’에는 정치권 용어로 자리 잡은 “내로남불”과 결이 다른 준엄한 경고의 말이 나온다.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 제자인 자공이 평생 실천해야 할 것을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나의 길은 하나로 관통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증자는 그 하나를 충서(忠恕)라고 말했다. 주희는 이 서(恕)를 용서라고 했지만 정약용은 추서(推恕)라고 해서 더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남이 나에게 행한 잘못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바라는 것을 먼저 베풀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추서는 공감하고 실천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을 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나를 대하듯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토크라시’니 ‘민주주의 실패’니 하는 말들이 정치권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세계가 아직도 냉전시대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하기는 혐오의 시대라는 말에서도 확인되듯이 이것은 꼭 정치권의 문제만도 아닌 우리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급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법 개정과 함께 맞는 올해 4‧3은 남의 탓이나 제 자랑 대신 이 추서의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동백꽃 피는 제주에는 공감의 실천이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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