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
내 탓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4.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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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면 소용 있겠나. 원망은 해보지 않았다. 그저 기회를 잘 못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할 뿐이지….”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일을 사흘 앞두고 만난 김평순 할머니(86·안덕면 창천리)의 이 한 마디가 여전히 머릿속에 맴돈다.

김 할머니는 4·3 당시 식구 11명을 잃었다. 12살 나이에 가족들이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총살당했다. 3살 막내는 자신의 등에 업혀 있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원망스럽지 않냐”고 묻자 김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못 태어났다”며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 공권력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대통령이 사과했으며, 4·3특별법이 제정되고 다시 개정되는 등 4·3의 과제가 하나 둘 해소되어 가는 지금도 정작 당사자인 김 할머니는 낫지 않는 아픈 상처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있다.

4·3의 광풍 속에 김 할머니의 식구는 열세 명에서 둘로 줄었다.

부모와 오빠·언니를 잃고 집까지 불 타 없어져 극심한 가난에 허덕였지만 ‘폭도 자식’,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했을 뿐 “살암시민 살아진다”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밥 한 숟갈 나눠주는 사람도 없었다.

김 할머니의 삶은 이념 대립과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김 할머니의 지난 70여년은 분명 살아온 게 아닌 견뎌온 시간이다. 그럼에도 김 할머니에게 4·3은 여전히 ‘내 탓’이다.

김 할머니를 만나고 나오면서 ‘4·3은 아직 진행 중인 역사’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했다. 4·3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고령의 생존 희생자와 유족 대부분이 김 할머니와 같지 않을까. 이들이 살아있을 때 4·3이 내 탓이 아닌 역사가 되는 날이 와야 한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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