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영령 한 서린 서대문형무소에서도 “영면하소서”
4·3 영령 한 서린 서대문형무소에서도 “영면하소서”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4.0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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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난 4·3 유족 현민종씨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사연을 전하고 있다.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서울에서 태어난 4·3 유족 현민종씨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해 사연을 전하고 있다.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할망, 하르방 삼촌들의 넋이 이곳에 다 있으니, 오늘은 흐르는 눈물 삼키지 말고 모두 다 쏟아 냅서.”

제주4·3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한 추념식이 서울에서도 봉행됐다.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일인 3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73주년 4·3 서울 추념식 및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서대문형무소는 4·3 당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도민들이 실제 감금됐던 곳이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추념식에 자리한 유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4·3수형인들의 한이 서린 비극의 장소에서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이날 박진우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 많은 유족들이 설렘과 흥분 속에 추념식을 준비했다. 4·3특별법이 전부 개정됐고, 2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참배했던 경찰청장과 국방부 장관이 73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 추념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남은 4·3 과제가 많다. 추미애 전 장관의 정성으로 21년 전 첫 삽을 떴지만 남은 과제로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4·3의 정의는 단 한 글자도 바꾸지 못했다. 오늘은 4·3은 사건일 뿐”이라며 “이를 바꿔야 한다. 백비를 세워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 회장은 또 “배상이라는 용어에 대해 여·야 관료들은 아직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 4·3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인 만큼 반드시 ‘배상’이 4·3특별법에 반영돼야 한다”며 “4·3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박 회장은 “냉전을 온 몸으로 거부했던 사람들이 이 곳 서대문형무소에 묻혀있다. 두 개의 분단된 국가를 거부했던, 느영나영 모다들엉 살려고 했던 섬사람들의 영혼이 여기에 묻혔다”며 “삼촌들의 영혼의 외침을 이제 들어야 한다. 영령들이시어 부디 영면하소서”라고 밝혔다.

서울에서 태어난 4·3 유족 현민종씨(58)는 자신의 사연을 전하며 눈물 흘렸다.

현씨는 “조부모와 외할아버지, 백부, 숙부, 셋째 고모, 넷째 고모 등 가족 8명이 1949년에 학살당했다. 할아버지는 50세, 외할아버지는 40세였으며, 미혼이던 나머지 네 분은 행방불명됐다”며 “아버지는 당시 열두 살 막내였다. 해병대를 제대했지만 연좌제로 직장을 잃었다. 가족들의 희생 등 자신이 목격한 일 모두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50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저는) 아버지 나이가 넘어서야 4·3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었는지, 왜 아버지가 그토록 입을 꾹 다물고 술만 드셨는지 알게 됐다”며 “3~4대 이르는 수십만명의 4·3 유족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피력했다.

뒤늦게 4·3을 알게 되자마자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에 연락해 4·3특별법 개정 집회에 참여한 현씨는 “4·3특별법 개정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더욱 많은 분들이 4·3의 진상을 알고, 억울함을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진=tbs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추념식에 참석해 영령들에게 참배했다.

추 전 장관은 추념사를 통해 “긴 세월 마음의 감옥에서 갇혀 지냈고, 집안마다 ‘순이삼촌’의 사연을 하나씩은 품고 있을 그 고통과 슬픔을 어찌 일일이 헤아릴 있겠나”라며 “‘곧지마라’면서 한을 안으로만 새겨야했었던 그 비극적인 일을 일깨우는 것은 다시 같은 일이 이 땅에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은 제주의 비극이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다. 치유하고 보듬으면서 다시 일어서는 4·3은 대한민국 과거사를 치유하고 세계사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라며 “이제 더 이상 4·3은 남쪽 끝 섬에서 벌어진 반란의 역사가 아니다. 폭도의 역사는 더더욱 아니다. 4·3은 잘못된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의 역사이자, 정당한 저항의 역사”라고 피력했다.

추 전 장관은 또 “제주 4·3정신이 긴장과 대립의 시대를 끝내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의 시대를 여는 ‘시대정신’이 되기를 기대한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는 희망과 진실의 시대를 여는 ‘시대의 촛불’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저는 자랑스러운 4·3 명예도민 1호로서 4·3정신을 시대의 정신으로 삼아 시대의 진보를 일구는 역할에 부끄러움 없이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추념식은 코로나19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수칙을 준수해 내빈 및 서울 거주 유족 등의 참석 인원을 제한해 봉행됐다. 모든 일정은 행사 시작에 맞춰 tbs tv 및 tbs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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