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형인 무죄-특별법 개정 의미...억울함 못 벗은 희생자 관심을"
"4·3 수형인 무죄-특별법 개정 의미...억울함 못 벗은 희생자 관심을"
  • 정용기·김동건 기자
  • 승인 2021.04.0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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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희생자 추념식 열린 평화공원 유족 발걸음
"고령 희생자 가족 위해 명예회복 속도 내야"
3일 행불 수형인 가족인 강서경씨(73·서귀포시 안덕면)도 자녀 현정씨(47), 희정씨(33)가 4.3 행불인 묘역에서 추모하고 있다.
3일 행불 수형인 가족인 강서경씨(73·서귀포시 안덕면)도 자녀 현정씨(47), 희정씨(33)가 4.3 행불인 묘역에서 추모하고 있다.

“73년 만에 아버지가 무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래도 4월 3일만 되면 닦고 닦아도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아. 하늘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처럼….”

3일 제73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행방불명 수형인 묘역.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유족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묘석을 덮고 있는 나뭇잎과 빗물을 닦아내고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했다. 몇몇 유족들은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특히 최근 4·3 행방불명 수형인과 생존 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역사적인 무죄 선고가 이뤄지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숙원이었던 ‘4·3특별법’도 개정되면서 올해 묘역을 찾는 일부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실질적인 명예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묻어났다.

이날 행불인 묘역에서 만난 이정자씨(75)는 2살 때 제주시 연동에서 살다가 아버지와 생이별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대구형무소로 끌려갔다고 들었으나 이후로는 생사를 모른 채 삶을 살았다.

한(恨) 맺힌 이씨의 삶에 올해 빛이 들었다.

국방경비법위반 혐의로 불법 군사재판에 넘겨져 대구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씨의 아버지 고(故) 이문구 할아버지가 지난달 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줬고 결국 아버지가 죄를 씻었다”며 “여기에 4·3특별법도 개정돼 올해는 정말 유족으로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3일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한 유족이 희생자의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김동건 기자.
3일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서 한 유족이 희생자의 영면을 기원하고 있다. 김동건 기자.

이어 “아직 억울함을 씻지 못한 희생자 가족들이 너무 많다. 정부에서 고령인 희생자 유족의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위해 이제 속도를 더 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행불 수형인 가족인 강서경씨(73·서귀포시 안덕면)도 자녀 현정씨(47), 희정씨(33)와 행불인 대전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 강원철씨의 안식을 기원하며 빠른 시일 내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 받겠다고 다짐했다.

위패봉안실에도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려는 유족들이 끊이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온 박진성씨(50)는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위패를 보며 절을 올렸다.

박씨는 “1949년 제주시 금악리에서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영문도 모른 채 정뜨르 비행장(제주국제공항) 쪽으로 끌려갔다”며 “오늘 내리는 비는 4·3유족들의 한 맺힌 울음”이라고 말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사연의 유족도 있었다.

변경홍씨(73)는 “1948년 제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어디론가 잡혀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다”며 “평생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이 답답한 마음은 누가 풀어주나”라며 4·3의 완전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용기·김동건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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