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 한순간 무너진 꿈" 애달픈 사연에 추념식장 '눈물바다'
"4·3에 한순간 무너진 꿈" 애달픈 사연에 추념식장 '눈물바다'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1.04.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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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한 손민규 할머니가 외손녀의 사연 낭독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선생님을 꿈꾸던 한 소녀가 4·3 광풍에 부모와 오빠는 물론 선생님의 꿈도 이루지 못하게 된 사연이 공개되면서 제73주년 4·3희생자추념식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3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고지형(21)·고가형(17) 자매는 4·3 사건 당시 부모와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씨(87)의 사연을 낭독해 추념식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4·3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복역 중 행방불명된 손 할머니의 오빠는 지난달 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손민규 어르신은 법정에서 "우리 오빠, 명예회복만 해 줍써"란 말을 남겼다.

외할머니의 사연을 낭독한 고가형씨는 "할머니께서 열다섯 살이던 시설 할머니의 오빠는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행방불명된 후 지금까지 시신도 찾지 못했다"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채 누명까지 쓴 오빠를 생각하며 슬퍼하시던 할머니를 볼 때면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고씨는 "지난 3월, 할머니의 큰 꿈이 이뤄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방불명인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라며 "재판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을 때 저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할머니께선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도 못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말을 이었다.

고씨는 "4·3당시 할머니는 지금의 저보다 어린 소녀였다. 그때 할머니의 꿈은 선생님이었다"며 "하지만 도망나가셨던 아버지와 함께 불타버린 집, 피난 중에 총살 당한 어머니,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 후 총살당한 오빠에 홀로 남은 할머니는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할머니는 친구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했다고 하신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많이도 참으셨다고 했다"며 "제가 할머니께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살암시난 살아져라'라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고씨가 이처럼 사연 소개를 이어가자 장내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사연의 주인공인 손민규 할머니도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고씨는 "제가 심리치료사의 꿈을 이뤄 할머니처럼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계신 분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드리고 싶다"며 "알고 보니 할머니처럼 4·3으로 평생 힘들어하셨던 분들이 참 많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하겠다. 할머니 사랑한다"고 말을 마쳤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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