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화
홍도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3.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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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역사문화탐방을 나섰다. 이 활동은 흥사단이 주최하여 인솔자가 프로그램을 짜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다. 이번에는 조천읍 관내를 샅샅이 둘러보기로 하였다.

선흘1리 낙선동 성담 앞에서다. 옆 모양은 사다리꼴로 잔잔한 돌까지 주워 담아 무너지지 않게 쌓았다. 골채에 담아 작지를 날랐던 여인의 손길이 눈에 어른거린다.

소개령이 내려진 지 나흘째 되던 날에는 선흘리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이 시작 되었다. 4·3사건은 7년 동안이나 지속하여 양민들이 현장에서 무차별 총구를 맞아야 했다. 무장대의 습격 방어차원에서 제주도 대부분 마을에 석성을 쌓았다. 석성은 성벽을 튼튼히 하고 들판의 곡식을 모조리 거두어 드는 차단 전술에 한 몫 하였다.

가운데 성문으로 들어가니 운동장 같다. 석성 중간 높이에 총안이라는 구멍은 적을 감시하고 총구를 넣었던 곳이다. 남자들은 거의 죽거나 입산하여서 열여섯 이상 처녀들이 보초를 섰다. 석성 안에 이백 세대가 살았으니 마을 전체가 수용소나 다름없다. 동쪽 성벽 근처에 외부형 돗통시 네 곳이 인구수를 말해주는 듯하다.

주변 대숲에 바람이 인다. 잎새가 너울거린다. 복원된 함밧집은 스산하다. 사람들은 잔대를 잘라 짚으로 엮어 세우고 진흙 벽을 만들었다. 방 하나에 네댓 식구가 웅크리고 살을 맞대어 지냈으리라.

사건이 있던 단오 전날에 부녀자들과 어린아이까지 동원되어 성을 완성하였다. 단오 날에 경찰과 격투가 벌어졌다. 무장대는 다음날 결혼 예정이었던 스무 살 처녀를 납치해 갔다. 여성들이 보초 서며 석성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 희생양이 되다니.

슬픔을 삭이며 성 후문으로 나왔다. 바깥 성 굽에는 해자가 설치되었다. 특이한 모습이다. 큰 가시가 돋은 나무는 이유 불문하고 베어다 해자 구덩이에 쌓았다. 침입자가 건널 수 없게 착안했지만, 물이 아닌 가시낭으로 뒤엉켜 혐오감이 든다.

무심코 지나쳤던 홍도화가 성 굽에 피어 눈에 들어왔다. 예닐곱 그루의 홍도화가 해자와 성벽에 붙어 있다. 홍매화 비슷하며 능수형에 꽃망울이 크고 붉다.

이제 보니 성 굽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설명을 듣고나니 격투 하던 양민의 얼굴 같다. 결혼 전날 끌려간 이십 세 처녀의 혼이 서려 있어서일까.

응어리는 모진 바람 이겨내느라 웅크렸다가 붉은 복사꽃으로 만개하고 있다. 가지는 아래로 숙이고 또 숙여가며 무엇을 말하려나. 귀 막고 눈 감고 입을 봉한 채 살아온 세월 홍도화가 대신한다.

누가 4·3의 원혼을 달래 주리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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