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세계의 지붕’으로 향하다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 ‘세계의 지붕’으로 향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3.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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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수확의 여신 안나푸르나 길을 걷다(1)
안나프루나 트레킹 나선 첫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자 산비탈의 계단식 밭에는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고 멀리 마차푸차레가 우뚝 솟아있다.
안나프루나 트레킹 나선 첫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자 산비탈의 계단식 밭에는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고 멀리 마차푸차레가 우뚝 솟아있다.

■ 산과 함께 보낸 세월  
한라산을 처음 올랐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냥 멋모르고 ‘한 번 가 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따라나섰던 것 같습니다. 당시 등산 장비도 없었고 힘들었지만, 남들이 다녀가지 않은 높은 곳을 올랐다는 자부심이 어깨를 으쓱이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후 틈만 나면 한라산을 올랐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자연이 좋아서 산을 오른 것은 아니었는데, 한두 번 오르다 보니 서서히 산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산과 함께 세월을 보내게 됐고 이렇게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는 동기가 된 듯합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산악인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꿈꾸는 곳이 바로 히말라야입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도 히말라야 어느 산을 오르는 그런 꿈은 가져 볼 수 있습니다.

몽골을 거쳐 처음 찾은 네팔, 등정이 아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간다는 연락을 받고 긴급히 신청해 꿈에 그리던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는 그 나라로 향했습니다. 외국의 산, 그것도 히말라야 산맥 트레킹은 처음이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밤중에 네팔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바로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 산들이 신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루 나절 버스를 타고 도착한 포카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다음으로 큰 도시로 커다란 페와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페와 호수는 길이가 5㎞, 폭이 넓은 쪽 2㎞, 좁은 쪽 100m로 아침이면 거대한 히말라야 산봉우리가 호수에 비쳐 장관을 이룹니다. 새벽에 이 장관을 촬영하기 위해 보트를 타고 호수 건너 쪽으로 갔으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서다
이번 일행은 고산 지대를 처음 오르는 사람이 많아 포카라 일대에서 적응훈련을 하고 다음 날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복잡한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 패디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 출발을 서두르는데 계곡 건너편 있는 가파른 산을 오른답니다. 각오는 했으나 시작부터 경사가 심해 내심 겁을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휴양도시인 포카라의 페와 호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트를 타고 노닐고 있다.
휴양도시인 포카라의 페와 호수를 찾은 관광객들이 보트를 타고 노닐고 있다.

“아주 천천히, 서두르면 큰일 난다”는 가이드의 당부를 듣고도 길을 나서면 급해지는 성격이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속으로야 천천히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 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가이드에게 욕을 먹곤 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계단식 밭 사이에 자그마한 전통가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 앞에 세워진 대문이 눈길을 끕니다. 제주도의 옛 정랑처럼 양쪽에 구멍 세 개 뚫린 돌을 세워 대나무를 걸쳐졌습니다. 옛날부터 사용해온 대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내몽고를 여행할 때 한 마을에서 이런 대문을 봤었는데 다시 네팔 산악지역에서 보게 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심을 가져봅니다.

멀리서 볼 때는 무척 가파른 산길로 보였지만, 지그재그 숲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습니다. 해발 1130m 패디에서 출발, 담푸스를 거쳐 해발 2100m에 있는 비촉 마을까지 6시간 정도 트레킹을 할 예정이니 서둘지 않아도 된다지만, 일행 중 일부가 힘들어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첫날이라 그럴 거라고 하면서도 가이드는 걱정스러운 표정입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산악 트레킹 코스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해마다 수만명의 트레커가 찾는 곳이란 설명을 들으며 오르다 보니 가파른 산등성이를 다 올랐습니다. 작은 마을이 있고 언제 왔는지 아이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반깁니다. 꽃을 담은 둥근 접시를 들고 춤추며 노래 부르며 손짓하는데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사진을 찍자 이내 따라다니며 또 손짓합니다. 가이드가 도착해서야 아이들의 손짓이 선물을 달라는 의미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이드는 앞으로 숙소까지는 평지이니 천천히 가면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면서 “초행인데도 잘 걷는다”고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산길은 거대한 나무숲이 우거졌고, 어떤 나무에는 야생난초 들이 향기 짙은 하얀 꽃을 피워 향기로운 기분으로 걷고 있습니다.

땅거미가 길게 협곡으로 내려앉을 무렵 숙소인 비촉 마을(해발 2100m)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는 앞서 봤던 마을처럼 아이들이 ‘낙산 삐리리’라는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추며 우리를 환영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가파른 산등성이에 있는 한 농가 대문이 제주의 옛 정낭과 꼭 같은 모양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있는 한 농가 대문이 제주의 옛 정낭과 꼭 같은 모양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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