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이면 풀릴 누명 70년 넘게 짊어지다니
20분이면 풀릴 누명 70년 넘게 짊어지다니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3.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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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6일은 제주4·3의 봄을 열어가는 날로 남게 됐다.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과 수형자의 명예 회복의 길을 여는 법안이 오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시간 제주지방법원에서는 300명이 넘는 제주4·3 수형인들이 70년 넘게 뒤집어썼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 제주의 법정은 박수와 흐느낌 속에서 역사의 한순간을 장식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이날 201호 법정에서 제주4·3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및 내란 실행 등의 혐의로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 중 333명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총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유족을 대표해 법정에서 발언에 나선 박영수씨는 “오늘 재판을 받기 위해 저승에서 온 330여 명의 영혼에 절을 올리고 싶다”며 묵례했다.

재판장인 장찬수 부장판사는 매 사건마다 무죄를 선고하면서 거듭 제주4·3의 비극에 공감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연좌제의 굴레에 고통받았던 유족들을 위로했다.

장 부장판사는 제주에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언급하면서 “피고인들이 얼마나 이 광경을 보고 싶었을까 싶다. 이들의 억울함이 오늘의 선고로 풀어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에게는 “좌익 활동을 한 500명을 잡자고 3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야만적인 시대를 살아낸 유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일반 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태삼(92)·이재훈(91) 옹도 70년 넘게 짊어져야 했던 누명을 벗었다. 이날 재판은 21개 사건으로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연속으로 진행됐다. 한 사건당 소요된 시간은 불과 20분 내외였다.

이에 앞서 행정안전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새 법안은 공포 후 3개월이 지난 오는 6월부터 시행된다. 올해로 73년째를 맞는 제주4·3의 완전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가야 할 길이 먼데 시간이 너무 모자라다. 이번 재심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7명의 유족이 마음에 맺힌 한을 풀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아직 명예회복의 기회조차 준비되지 않은 희생자가 많다.

김광우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의 말처럼 억울한 희생자를 모두 찾아내 하루속히 이들의 한과 유족들의 아픔을 모두 해소할 때 비로소 제주4·3의 완전한 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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