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여신들
봄의 여신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3.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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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57년 만에 찾아온 폭설과 한파로 움츠리게 했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이제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봄이 시작 되던 날, 지인에게서 사진을 보내왔다. 봄을 처음 여는 꽃이라는 복수초와 제주의 들꽃 변산 바람꽃이다. 봄기운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꽃들이라 의미도 있지만 앙증맞아서 참으로 아름답다.

가녀린 몸매를 안고도 꽁꽁 얼어붙은 잔설을 뚫고 나오는 들꽃들이기에 더욱 감동을 주는 야생초들이다. 어떻게 보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과 빼닮았다. 그래서 나는 눈 속에 피는 봄의 여신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풀이 그들의 보금자리라면 하얀 눈은 그들의 어머니였을까! 여인의 하얀 속살 같은 깊은 곳에서 속삭임하며 세상 밖으로 잉태하는 모습이 태고의 신비와도 같다.

혹독한 추위 속에 뿌리를 건사하면서 겨울의 기나긴 산고(産苦)를 이겨낸 봄꽃들. 이 땅에서 자연의 생명을 만들어 주고 있음에 색다른 매력과 가치는 숨겨 온 꾸미지 않은 속살들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숨을 쉬면서 살아간다.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스럽다.

숨 가쁨과 심장쇠약에는 복수초, 변산바람꽃은 소염에 좋다고 한다. 생명초 되기까지 혹한을 견디며 세상에 태어나 몹쓸 병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약이 돼 희생해 주는데서 더욱 감동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산다.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진리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를 본받는다면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한라산 가는 길, 숨이 차서 헉헉 거리지만 한발 한발 내 디면서 꽃들을 발견하고는 멈춰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카메라 샷다를 찰칵찰칵 눌렀을 지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늘아래 조그마한 마을에서 밝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나와 인연된 지인 등이 시린 허전함으로 지내 온지도 꽤나 세월이 흘렀다. 오래전부터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음에 언제나 건강하나 보다.

아주 떠날까 싶다가도 짓궂은 얼레에 억매 어, 아직껏 남아준 그 고마움에 짓고, 읊는다.

 

노랑 하양 설연(雪蓮)

하양 꽃은 기다림

노랑꽃은 영원한 행복

 

노랑 하양 봄을 여는 눈부신 여신이여

초봄하늘 밤

초롱초롱

별빛 나거든

나인간가 여기옵소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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