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즐거운 동행, 영등할망과 함께
기후와 즐거운 동행, 영등할망과 함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3.09 18: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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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진 제주기후문화연구소 소장·제주대 강사·논설위원

‘보재긴 사흘 날씬 안다’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제주 어부들은 3일 정도의 날씨는 안다는 뜻이다. 과거 제주 해민들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관찰하고, 한라산에 낀 구름을 살피면서 날씨를 예감하고 바다로 나갔다.

제주인들의 기후문화 중 대표적인 것이 영등신앙이다. 한반도에도 영등신앙이 있지만, 제주도가 가장 뚜렷이 남아있다.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다. 

영등제는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열나흘까지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환영하고 송별하는 축제다. 영등할망은 제주 섬에 귀덕리 복덕개로 들어와서 우도 질진깍으로 떠난다고 한다. 대륙고기압에서 비롯된 북서계절풍이 제주도 서쪽으로 들어와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진로와 일치한다.

제주 사람들은 영등할망이 섬을 두루 살피면서 해초 씨와 곡식 씨를 뿌려주고 떠나면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영등할망이 딸을 데리고 올 땐 날씨가 좋고,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땐 날씨가 궂다는 해학도 담겨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2월 초하루에 귀덕·김녕 등지에서 나뭇대 열둘을 세우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냈다. 애월 사람들은 떼 모양을 말 머리처럼 하여 비단으로 꾸미고 떼몰이 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했다. 보름에 끝맺었으며 이를 연등이라 했다. 이 달에는 배 타는 것을 금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영등달인 음력 2월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대개 3월이다. 이때는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고 바람도 바뀐다.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울 때다. 약해지던 대륙고기압이 되살아나 겨울로 돌아간 것 같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대륙고기압이 자주 변질되면서 풍향도 변화무쌍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이렇게 날씨가 고르지 못 한 시기에 배를 띄웠다간 표몰하기 십상이다. 제주 해민들은 영등절 시기에 이런 기후가 나타남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럴 때 바다로 나가는 것은 위험해서 해상 활동을 접었다.

표해록으로 유명한 최부는 영등절 무렵에 육지로 가려다 표류했다. 바람이 수상한 때라 제주인들은 말렸지만, 경차관 최부는 이를 무시하고 출항을 명했다가 결국 해난사고를 당한 것이다. 

며칠 후면 영등절이 시작된다. 칠머리당을 비롯한 제주도 곳곳에서 영등제가 행해진다. 영등신앙에는 기후를 거스르지 않고, 친화하려는 제주 선인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이때 제주인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대동 축제를 벌였고, 풍신들을 즐겁게 해드리며 해상 안전과 풍어 및 풍년을 기원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기후를 우습게 알고 있지는 않은가.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난방기를 무분별하게 트는가 하면, 공장을 쉴 새 없이 가동한다. 거리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만든 물질문명이다. 그로 인해 인류가 경험하지 못 했던 가파른 기온 상승이 우리 눈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1.5도 이상 오르면 인류의 미래는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지난 100년에 이미 1도 정도 상승했다. 남은 0.5도 상승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제주도는 지난 세기에 기온이 1.5도 상승했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라산에 올라가 보면 고사한 구상나무가 즐비하다. 제주 해안에는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 기후재앙의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인간의 가벼움이 기후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기후위기를 막지 못 한다면 새로운 기후에 인류는 파멸을 맞을 수도 있다. 영등할망과 함께 기후와 즐겁게 동행하며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자 했던 제주 선인들의 지혜를 본받아야겠다.

이제는 인간 존엄을 넘어 자연 존엄을 추구하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기억하자.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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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순 2021-03-10 09:45:01
제주도 신화에는 평화, 질투, 음모를 꾸미는 '3,000선비' , 자청비의 '정수남이 ' 등등 사람들끼리 얽히고 설키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기후와 제주도 신화♡'자연존엄'
ㅡ훈훈한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울컥했습니다^^
영등할망을 존경합니다♡제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