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과 청산도
장한철과 청산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2.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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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애월문학회장

,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청산이라 이름 붙여진 작은 섬을 향한다. 겨울 초입이라 날씨로 인한 뱃길 걱정을 했는데, 햇살 맑고 바람 없어 감사하다.

이번 문학기행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 제주 사람 장한철이 남긴 표해록의 발자취를 더듬고자 함이다.

글공부를 좋아했던 애월 출신 장한철은 1770(영조 46) 10(음력)에 향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한다. 마을 어른들과 관청에서 여비를 모아주어 서울로 시험을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해 12, 스물아홉 명을 태운 배는 제주를 출발한다. 그러나 배는 풍랑을 만나 유구 열도(오키나와)까지 갔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청산도까지 이르게 된다. 당시 배가 닿았으리라고 추측되는 지점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바닷가 자갈밭으로 내려가는 동안 시간도 25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1771년 정월 초엿샛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에 돛과 노도 없는 배는 모진 바람에 흔들렸고 뱃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죽기만을 기다린다. 시체라도 잃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배에다 묶고 몸을 싸맨다. 죽은 혼백이라도 의지하려고 서로를 끌어안았고 장한철도 정신을 잃고 만다. 비몽사몽 간에 아름다운 여인이 밥을 갖다 주는 꿈을 꾼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비바람으로 깜깜한 밤하늘에 희미하게 비치는 큰 산이 보였다. 뭍으로 가야 살 수 있기에, 난파된 배에서 뛰어내려 허우적거리며 생명줄을 붙잡는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뭍으로 기어 나온 사람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바위를 기어오른다. 들려오는 비명은 누군가 떨어졌음을 알릴 뿐 누구인지는 모른다.

당시에 어둠 속에서 죽을힘으로 기어 올라갔을 가파른 바위를 끼고 오솔길을 걸어서 고개를 넘어오니 당리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에서 당시 장한철 일행을 정성으로 돌본 당리마을 사람들의 고운 심성까지 보는 듯하다.

기력을 회복한 장한철이 신을 모신 당집에 들렀을 때, 꿈에서 본 아낙이 심부름하고 있어서 깜짝 놀란다. 그녀는 열일곱에 시집을 갔지만, 이듬해 남편을 여읜 스무 살 과부였다. 장한철은 그녀와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지만, 미래를 기약하며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청산도에 가면 이런 두 남녀의 애절한 사연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하트모양의 개매기체험장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봐도 하트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개매기는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썰물 때 가두어 두었다가 물이 빠지면 물고기를 잡는 전통방식을 뜻한다.

서편제영화 촬영지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노랫가락은 스무 살 청상과부가 장한철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움도 맺히면 한이 되는 법이다. 지금도 못다 한 사랑이 한이 되어 어느 바위틈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한이 바닷속까지 닿아서 바다가 저리도 푸른 건지, 그 한을 하늘이 품어서 청산도의 하늘이 저리 푸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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