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청소
봄 청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2.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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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원 시인

입춘 절기가 지나면 봄기운은 귀신같이 스며든다. 코끝이나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싸하고 으슬으슬한 공기 안에 봄의 숨결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우리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는가. 새해가 시작되면서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고 바랐지만 지금도 마스크를 쓴 우울한 봄날은 계속되고 있다.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새해가 시작됨에 행복한 일이 많기를 희망하는(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새 출발의 마음으로 청소만 한 게 없다. 지루했던 긴 겨울의 찌뿌둥하고 답답한 심사를 풀기 위해 봄 청소를 한다.

알싸하고 성급한 2월의 봄은 원래 집 안 대청소와 함께 시작된다. 일본은 일찍이 하찮게 여긴 청소를 정신수양 혹은 마음의 평온을 위한 의식적 행위로 의미화시키며 문화로 성장시켰다. 우리 역시 지치고 상처로 얼룩졌던 지난해 코로나19의 공포와 후유증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추슬러 본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이다. 청소는 어둡고 우울한 기운을 떨치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희망의 노래다. 요한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왈츠에 몸의 리듬을 맞추고 경쾌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선율에 봄의 향기를 실어본다. 겨우내 의기소침하게 웅크렸던 가슴을 펴고 마음의 탁한 먼지와 무거움을 털어낸다. 창문을 열면 숨이 탁 트이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쾌적하고 개운한 기분이 게으름과 짜증스러움을 다독거린다. 봄 청소에는 새로운 시작의 활력과 스스로에 대한 뿌듯한 격려가 들어있다. 봄은 봄이다. 곧 연둣빛 새순이 돋고 화사한 꽃봉오리가 움트고 새소리가 들릴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집안을 들여다보니 퇴락한 초가처럼

뒤숭숭하다

봄이 오신 거다

침대 밑을 털어내고

노란빛 침대 시트를 깔고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일상의 게으름을

제각각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준다

무거운 옷치레도 깊은 서랍 속에 잠재운 뒤

액자에 쌓여 있는 무료함마저 털어내고 나니

사진 속 우리 식구들 모두 활짝 웃고 있네

-금동원 봄 청소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고 긴 여행을 다녀온 듯 작년 한 해의 비현실적인 시공간의 공백을 따스한 위로의 마음으로 깨끗하게 청소하자. 함께 고생한 가족과 이웃, 친구들, 그리운 사람들과 새봄을 상쾌하고 활기차게 맞이하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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