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피는 사연
동백꽃이 피는 사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2.0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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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산책길 따라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붉은 꽃잎이 잘 여문 밤송이처럼 꽃봉오리들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동백 잎 사이로 살포시 열려있다. 모처럼 화창한 오후 운동 겸 산책을 위해 별도봉을 찾았다.

사방이 확트인 넓은 들녘엔 억새들이 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땀으로 전신을 감싸며 둘레길을 다녔는데 어느덧 겨울이다.

햇살이 유난히 곱다. 넓은 바다에 반짝이는 햇살 무늬를 먹고 익어가는 석양을 바라본다. 석양이 비디오라면 능선을 타고 오르는 갯바람은 배경 화면에 깔리는 오디오다.

이런 풍경을 마주하며 흔들리는 억새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돼 절로 사색의 길로 떠나게 된다.

누가 말했던가, 사라봉 자락의 황홀한 정경에 파묻혀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이다.

사봉낙조를 모르고서는 제주도가 자랑하는 영주십경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므로 일출을 더욱 웅장하게 수놓는 해돋이의 장관인 성산일출과 짝을 이룬 사봉낙조라 해 저무는 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석양을 바라보며 신의 미흡한 곳을 비추는 붉은 침묵이라고 했으며 하루를 마감하느라 고생한 눈물비단이라고도 표현 했다.

바다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동백꽃 군락지로 들어섰다.

동백꽃의 꽃말은 투신이다. 겸손을 잃거나 사랑을 잃으면 송두리째 사라지고 마는 심성이랄까, 어떤 꽃이든 시들기전에 낙화하면 마음이 아프다. 동백 잎은 누구를 기다리길래 사계절 푸르른 것일까.

긴 터널의 어둠이 지나 새벽이 열리면 이곳에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연을 묻지 않는 동백꽃처럼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건강한 아침인사를 나눈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을 녹이며 붉은 꽃을 피워내는 동백꽃을 닮았다.

동백꽃잎 언저리에 한 마리 새가 홀로 앉아서 울고 있다.

추운 겨울이면 새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신의 둥지를 찾아 머나먼 미지의 세계를 떠돌다 때가되면 돌아오는 것인가, 인간은 저마다의 평온한 집에서 안식을 취하며 살아가지만 들판의 나무와 새들은 자신의 쉴 만한 곳을 미리 알아서 정착하는 것일까, 세상 어디에도 마음 편히 둥지를 툴 곳이 없거늘, 새들은 저렇게 머나먼 하늘을 날아서 새로운 둥지를 만들 곳을 찾아 떠나는 본능은 참으로 경이롭다.

동백나무에 작고 귀여운 꽃망울이 열렸다. 소한이 지나자 역대급 한파다. 무려 57년 만의 일이다. 겨울채비에 나선 작은 들꽃무리 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한다.

별도봉 들녘에도 어느덧 겨울이 찾아들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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