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개 배송...병원도 못가” 설 앞둔 택배노동자 ‘헉헉’
“300개 배송...병원도 못가” 설 앞둔 택배노동자 ‘헉헉’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1.02.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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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제주시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서 3년차 택배기사 고영훈씨가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정용기 기자.

“300개가 넘는 택배 배송을 빨리 끝내려면 쉴틈 없어요. 계속 뛰어요. 병원에 갈 시간도 없습니다.”

4일 오전 7시 정각 제주시 일도2동 한 아파트 단지. 3년차 택배노동자 고영훈씨(38)가 300개가 넘는 택배를 1t 트럭에 한가득 싣고 도착했다.

동이 트기 전이었지만 고씨는 배송을 빨리 끝내야 다음 날 배송을 준비할 수 있다며 뛰기 시작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세트, 특산물 등 배송 물량이 늘어나면서 고씨가 운전하는 1t 트럭 적재함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배송 시작 10분 만에 고씨의 목덜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리다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계단을 뛰면서 오르내렸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고씨가 날랐던 택배는 하루에 200개 정도였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온라인 상품 주문이 늘면서 고씨가 하루 평균 배송하는 택배는 300여 개를 훌쩍 넘고 있다.

고씨는 “명절이 임박하면 배송 물량이 더 늘어나 하루 400∼500개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무거운 물품을 배송하다가 허리를 다쳤지만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퇴근 후 찜질로 관리하고 있다.

4일 오전 제주시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서 3년차 택배기사 고영훈씨가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정용기 기자.

그나마 택배사가 설 특수를 앞두고 분류 작업 인력을 일부 투입하면서 숨통은 트인 상황이다.

고씨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널리 알려지면서 빠른 배송을 독촉하는 등의 민원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제주시 동지역에서 10년째 택배 배송을 하는 김모씨(43)도 요즘 식당에 앉아서 밥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배송 중이다.

김씨는 “점심을 대부분 편의점 음식으로 때운다. 편의점에서 앉아 먹는 건 정말 여유가 있을 때고 대부분 차로 이동하면서 김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에 따르면 도내 택배 노동자는 300명이 넘는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전국적으로 택배 주문이 늘면서 업무량이 늘어 과로사하는 택배 노동자가 속출했다.

이에 전국택배노조는 택배사와 정부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요구는 좀처럼 수용되지 않았고 노조 측이 파업까지 예고하고 나서야 택배사가 뒤늦게 분류 인력을 투입했다.

김씨는 “택배 물량이 늘면서 소득이 늘어난 건 맞지만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치료비가 더 든다”며 “코로나19 호황을 누리고 있는 택배사가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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