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계지손 연계지익
일계지손 연계지익
  • 뉴제주일보
  • 승인 2021.01.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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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앨범을 뒤지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다. 제주문화원에서 발간되는 자료집에 제출하려고 고르는 중이었다. 30년 전의 사진인데 내 젊음의 표상이다. 한창 혈기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초록빛을 띤 풋풋한 사과 같다.

12월이 되면 전국의 사오백 명 직급자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여 2박 3일간 세미나를 열었다. 이때에는 꼭 초청 강사 강연이 있고 시상을 하며 다음 해 영업 활동 증가를 위한 격려의 장이 된다. 장소로는 제주도 신라호텔만큼 큰 장소가 드물었다.

바라보는 사진은 강의 시작 전에 제주지부장 국장 6명과 이계진 아나운서가 로비에서 찍었다. 당시의 이계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차분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주말이어서 제주에 온 유명인으로 알고 기념촬영 했을 뿐이다.

웬걸. 강의가 시작되자 사회자는 이계진 아나운서를 단상으로 모신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이어지고 쥐 죽은 듯이 경청하려는 분위기다. 적막을 깨고 흐르는 첫 번째 나긋한 단어에서 참석자 모두를 심장이 쿵쿵하게 만들었다. 한 시간의 강의는 오 분 정도로 느낄 만큼 물 흐르듯 지나갔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대목이 있다. 이계진 아나운서가 책에서 읽은 내용과 살아오며 지표로 삶는 혼합된 언어는 ‘일계지손(日計之損) 연계지익(年計之益)’이었다. 하루하루 계산하면 손해인 듯해도 일 년을 통틀어 계산해 봤더니 이익이더라는 말로 풀이해 주었다. 아래 직원에게 손해 안 보려고 인색하다 보면 되던 일도 안 될 것이라는 뼈아픈 얘기였다. 그 후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일계지손 연계지익’이라고 외우고 다니며 나의 인생 지표로 삼아왔다.

우도에 문학 봉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 돈을 들이는 순수한 봉사였다. 처음에 우도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을 듯하다. 자비 부담금을 포함하며 찾아가는 문학 놀이 공모전에 선정되고 방과후 수업 실시할 때는 아이들만 생각했다. 배고팠던 시절의 나를 회상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문학의 꿈을 키워 주어 올바르게 나가게 하는 바람이었다.

5년이 지나고 인제 와서 결과는 대만족이다. 인성이 모자랐던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하여 폭력근절에도 기여하였다. 해마다 대회 출전하며 글쓰기를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우도문단 4집까지 내게 되었다. 명실상부한 우도문학지로 거듭 태어났다.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포기했다면 독도문예대전 수상작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젠 거듭되는 ‘연계지익’만 나타날 것이다.

원로 문인 일부는 책을 받아보고 학생들의 표현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었다. 칭찬 한 그릇에 연계지익으로 배가 부른 하루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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