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그리고 베를린 장벽
대중문화, 그리고 베를린 장벽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1.01.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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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힘은 이념 대립도 무력화시킬 만큼 강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동독 공산당은 나날이 거세지는 반정부 시위를 달래기 위해 같은 해 11월 기자회견을 열고 여행자유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상은 여권 심사기간 단축 정도의 ‘민심 달래기’ 정책이었지만 이탈리아 언론은 이를 확대 해석해 ‘베를린 장벽 붕괴’라는 세기의 오보를 냈다.

보도 이후 반정부를 외치던 동독 시민들은 물론 서독 시민들도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같은 시간 인근에서는 데이비드 보위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난 기억할 수 있어. 벽에 기대서서 / 총알들이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녔고, 우리는 키스했지 / 마치 아무것도 무너지지 못할 것처럼 / 수치심을 벽 건너편에 둔 채…”

장벽 앞에서 만나는 비극적인 연인의 사랑을 담은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히어로즈’가 베를린 전역에 퍼져나가자 독일인들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영국인 가수의 노래가 언론의 오보로 촉발된 독일인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자극하면서 냉전의 붕괴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최근 제주4·3평화재단의 노력은 무척이나 기대된다.

평화재단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공감대를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대중영화를 선택했다.

대중문화는 국민들에게 친숙하다. 이념이나 국가, 그리고 정부 정책보다 더욱 국민들의 삶과 정서에 와 닿는다. 국민들도 쉽고 빠르게 대중문화를 흡수한다.

4·3의 비극을 담은 대중영화가 전국 극장의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듯이 대중영화가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에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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