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비’(我是他非)와 ‘역지사지’(易地思之)
‘아시타비’(我是他非)와 ‘역지사지’(易地思之)
  • 부남철 편집국장
  • 승인 2021.01.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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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 되면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무엇으로 선택할지 관심을 끈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12월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전국의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 이는 그 해의 우리나라 사회상을 평가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한 해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언론은 물론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어왔다.

지난해에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했으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과 법무부와 검찰의 난투전 등으로 큰 관심을 끌지 못 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지난해의 사자성어는 신조어인 ‘아시타비’(我是他非)다. 

‘아시타비’(我是他非)는 지난해 12월 7일부터 14일까지 전국 교수 906명을 대상을 중복투표를 허용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32.4%의 득표율을 얻었다.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의 뜻을 한자로 번역한 신조어로 ‘같은 사안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의미를 갖는다. 
2, 3위에 오른 후안무치(厚顔無恥·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와 격화소양(隔靴搔癢·신을 신은 채 가려운 부위를 긁는다)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

교수들이 이 같은 사자성어를 채택한 것은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바라본 것이다. 최근 나 자신을 포함해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물론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고 서로를 상스럽게 비난하고 헐뜯는 소모적 싸움만 무성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누리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정치, 사회적으로 편 가르기가 더욱 심해졌다.

2019년에는 공명지조(共命之鳥·목숨을 함께 하는 새)가 1위로 선정됐다. 두 머리 중 한 머리가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자 다른 머리가 질투를 느껴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고 결국 모두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자기만 살려고 하다가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같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안타까움이 녹아있다. 2위인 어목혼주(魚目混珠·물고기 눈과 진주를 분간하기 어렵다)도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어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2019년에 이어 2020년도 분열된 한국사회를 그대로 투영하는 듯해 마음이 찝찝하다.

2018년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 1위를, 밀운불우(密雲不雨·구름은 가득 끼어있는데 비는 내리지 않는다)가 2위를 차지했다. 2017년엔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을, 2016년엔 군주민수(君舟民水·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가 그 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이같이 최근 몇 년간 올해의 사자성어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소모적 싸움만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얼핏 단순하고 명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어느 한 쪽만을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아군과 적군이라는 적대적 진영논리가 개입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판단 기준이 그때그때 다를 때에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주지역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초부터 제2공항 건설, 제주시 도시공원 개발 등 현안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개인 간, 사회 내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소모적 논쟁은 개인 또는 사회 발전을 위한 동력이 아니라 걸림돌이 될 뿐이다. 실타래처럼 꼬여 버린 제주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올해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상식이 통용되길 기대해 본다.

부남철 편집국장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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